대선의 바로미터 그 허와 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충청은 영호남과 수도권에 비해 여론에서 저 만치 떨어져 있었다. 특히 충북의 경우 대통령은 커녕 지난 반세기 동안 총리 한명 내지 못했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도 소외현상이 컸다. 이번 대선에서도 대세의 결정적 키는 역시 유권자의 비중이 높은 수도권과 표의 응집력이 강한 영남과 호남이 쥐고 있다. 그런데도 각 후보의 캠프가 충청을 바라 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로 대선이 그야말로 양강구도로 정착되면서 한 표가 아쉬운 치열한 접전의 상황에선 충청의 표심이 예의 ‘캐스팅보트’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97년의 사례가 이회창과 노무현의 캠프를 안달나게 하고 있다.
97년 선거는 간발의 승부로 결론났다. 당선된 김대중후보와 분루를 삼킨 이회창 후보간의 표 차이는 불과 39만557표. 이 정도의 표 차이는 사실 지방선거에서나 나올 법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후보간의 표 차이가 충청권에서의 그것과 거의 맞아 떨어짐으로써 졸지에 충청권의 표심이 대세를 결정지은 형국이 됐다. 당시 대전 충남 충북에서 김대중은 108만6252표를 얻어 이회창의 67만7933표보다 40만8319표를 앞섰다. 특히 주목된 것은 김대중 29만5666표, 이회창 24만3210표로 나타난 충북의 결과로, 전통적 보수성향으로 분리되던 그동안의 지역정서를 무색케 했다.

충북에서 이겨야 당선된다

지역 정치권에서 즐겨 사용하는 말중엔 ‘충북에서 이겨야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속설이 있다. 이 말엔 일종의 논리적(?) 근거가 따라 다닌다. 지금까지 국민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았던 아홉번의 선거중 5대를 제외한 여덟 번의 선거가 모두 충북에서 우위를 점한 후보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1963년 5대선거는 5.16쿠데타로 부상한 박정희와 윤보선의 한판 승부로 치러졌는데 충북인들은 15만6000여표 차로 떨어진 윤보선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단 한번을 빼곤 이렇듯 충북에서의 우승자가 최종 대권을 거머졌다는 사실은 표면상으론 일단 주목될만하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충북은 대선에서 표집표본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충북의 여론은 곧 선거 결과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97년 15대를 제외하면 역대 선거가 모두 정상적인 선거 절차나 정당간의 공정한 게임이 억제된 상황에서 줄곧 집권당 후보의 당선자만 냈다는 점에서 ‘충북의 바로미터’ 이론은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하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갖지 못한 충북의 정서가 결국 보편적 대세에 편승한 결과일 뿐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올 대선이 궁극적 속내 드러낼 듯

그러나 연말 대선전이 본격화되면서 충청의 표심이 갑자기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은 후보 단일화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전술했듯이 역대 선거 결과를 의식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이 충청 표심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판단이 옳을 것이다. 이번 대선의 성격을 진단할 때 가장 적절히 사용되는 말이 복합구도다. 말 그대로 한가지 확실한 변수보다도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역구도에 있어서도 과거와 같은 첨예한 지역대립은 나타나지 않지만 변형된 지역감정은 여전하다. 여기에다 2, 30대와 5, 60대로 대별되는 세대간 구도와 보. 혁으로 상징되는 이념구도가 혼재하는 선거전이 치러질 전망이다. 이는 곧 과거와같은 특정 지역에서의 절대 강자나 절대 약자의 판세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연말 대선과 관련, 가장 객관적인 풍향을 가늠케할 수 있는 지역은 특정 후보에 대한 표쏠림 현상이 상대적으로 덜한 충청, 특히 충북이다.
JP와 이인제의 쇠락은 곧 충청 표심의 균형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올 대선에서도 충북의 투표결과가 전체를 대변한다는 가설은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소위 맹주가 사라진 충청권에서 만약 1위 득표를 한다면 그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비록 JP와 이인제가 충청권을 무기로 타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마지막까지 활로를 찾고 있지만 이들의 충청권 장악력은 이미 뿌리를 잃었다. 이에 대해 지역의 한 정치전문가는 냉정하게 진단한다. “JP가 마지막까지 뜸을 들이고 있고 또 이인제가 그동안 갖은 억측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민주당을 탈당한 이유는 딱 한가지다. 결국 정치적 돌파구를 여는데 있어 충청권을 볼모로 삼겠다는 의도다. 물론 이곳엔 지난날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지지세가 아직까지 상존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입장은 이것이라도 부여잡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멀어졌고, 자칫 잘못하면 그나마 마지막 보루마저 잃을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이 다른 정치세력과 손잡는다고 해도 세(勢)가 형성되지 않는한 대선이 끝나도 문제다. 그 불길한 징후는 연말 대선과 2004년 17대 총선에서 극명하게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고 내다 봤다.

충청도가 이상하다?

이번 대선과 관련, 충청권에서 또 한가지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유권자 개개인이 후보지지성향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는 노.정 후보 단일화 이후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록 여론조사의 공표는 불가능하지만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에 대한 지지세는 어느정도 감잡히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후보 단일화 이전까지는 충청, 특히 충북에선 이회창 대세론이 줄곧 유지됐다. 지난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노풍도 충북에선 잠깐 스쳐 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각 당이 서로 자기 당의 우세를 장담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균형에 큰 변화가 온 게 사실이다. 물론 후보 단일화에 따른 노무현 후보측의 단풍(單風)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지금의 양강구도를 즐기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주고받는 폭로전은 유권자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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