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출신은 ‘상고’ 출신을 모실 수 없다?

11월 26일 2시 20분께.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 3층 기자실에서는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킨 민주당 의원 두 명의 입당 기자회견이 열렸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 복당설이 강력하게 나돌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최종 선택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물론 박상규 의원은 과거 여권출신 인사였다는 점에서 그의 한나라당 입당은 어느 정도 양해가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DJ정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고 국민회의와 민주당 시절 각각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 등의 요직을 지낸 김원길 의원의 경우는 달랐다. 김 의원은 특히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을 주도하며 “올 연말에 이회창 후보가 뭐라도 되는 날에는 독일의 히틀러보다 더 심한 나찌 독재시대가 올 것”이라며 ‘이회창 집권 결사 저지’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터였다. 하지만 이날 김 의원의 입당의 변은 그때의 주장과 완전히 달랐다.
“경제와 대외관계를 위시한 외교, 대북, 각종 사회문제를 고려할 때 차기 정부의 국정경영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보다) 더 안정되고 신뢰가 간다고 말하고 싶다.”

김원길의 ‘학벌주의’는 ‘상고’ 출신
대선후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사실 김원길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김원길 의원은 11월 4일 민주당을 탈당하기 전 기자들에게 “교섭단체를 구성, 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의원들의 한나라당행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게다가 후단협 내부에서 ‘4자연대 통합신당’의 기류가 흐르자 후단협을 탈퇴하는 등 ‘순수한 후보단일화론자’를 자임해왔다. 그런데 김 의원은 왜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된 이후 친정인 민주당에 복당하지 않고 한나라당을 선택했던 것일까.
노풍이 가라앉고 있던 어느 날 김원길 사무총장이 노 후보를 만나고 나오면서 이렇게 한마디 던졌다.
“저 사람하고는 같이 일을 못하겠구만.”
노 후보에 대한 ‘감정’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렇게 사무총장 때부터 노 후보와 갈등을 빚어온 김 의원이 후단협을 주도하며 후보단일화를 강하게 밀어부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애초부터 김 의원의 머릿속에는 ‘노 후보 중심의 후보단일화’란 없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던 국면에서 김 의원의 정치적 선택은 ‘정 후보 중심의 후보단일화’와 마지막 카드였던 ‘한나라당 입당’ 등 두 가지뿐이었다.
만약 정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됐다면 김 의원은 당연히 민주당에 복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자 김 의원은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3개월 전부터 “깜짝 놀랄 만한 인사가 한나라당에 올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나 김 의원 역시 26일 입당 기자회견 때 “한나라당 입당을 결정한 지 꽤 됐다”고 말한 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의원의 이러한 정치행보에 ‘학벌주의’가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의원과 정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과(상대) 선후배 사이이자 경영자 출신인데 반해 노 후보는 부산상고 출신이다. 한국의 최고학벌인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김 의원이 부산상고 출신에 불과한(?) 노 후보를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김 의원이 노 후보를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학벌 차이’였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을 정도다.
김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에 노 후보를 상대로 한 ‘학벌주의’가 작용했다는 분석과 관련, 김 의원이 민주당의 ‘돈줄’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DJ정권 출범 이후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 등을 지낸 김 의원은 정치후원금 모금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선관위에 신고한 후원금 내역을 살펴보면 김 의원은 집권후반기인 2000년과 2001년에 모두 9억1000여만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민주당 의원들의 2년간 평균 후원금인 2억4000만원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김 의원은 재계 경기고 인맥과 매우 친하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경기고-서울대 인맥으로 둘러싸인 정치적 후원그룹에서 김 의원을 압박했을 것이란 분석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정가의 한 소식통도 “이회창 후보가 직접 전화하는 등 (김 의원을) 엄청 끌어당겼다”며 “특히 (김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을 위해) 한나라당 밖에 있는 경기고 동문들이 움직였다”고 말해 ‘경기고 동문들이 한나라당행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경기고 동문을 중심으로 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김 의원도 동참한 셈이 됐다.

민주당, “전국구 의원직과
각료직을 보장했다”

한편 김 의원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자리’를 보장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11월 29일 “우리 당에서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배신자 김원길 의원에게는 전국구 의원직과 각료직을 보장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의원이 한나라당 입당을 결심하면서 그의 핵심측근에게 “나는 다음 총선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구를 물려줄 테니 한나라당에 같이 가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심지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명박 시장의 낙마를 전제로 ‘서울시장 후보직’을 약속받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김 의원은 올초 서울시장 후보출마를 준비했지만 갑자기 사퇴했다”며 “지방선거 전 정계개편을 예상하고 민주당이 아닌 다른 간판을 달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못다 이룬 서울시장의 꿈을 쫓아서 한나라당 입당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리보장’을 약속받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는 주장만으로 ‘김원길 미스터리’를 풀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민주당에 복당해 노 후보의 손을 들어준다면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을 경우에도 얼마든지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 후보 역시 경영자 출신의 ‘경제참모’인 김 의원의 복당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이 한나라당을 택한 것은 ‘노 후보를 대선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속내를 ‘극한의 실천’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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