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향기 좋기로 유명한 ‘에스테스테스트’라는 백포도주가 있습니다. 옛날 포도주를 좋아하던 독일의 어느 주교가 로마로 가는 도중 종복으로 하여금 앞서 가게해서 그 지방의 술맛을 미리 감정하게 하고 좋은 술을 파는 집의 벽에 ‘최상(最上)’이라는 뜻으로 ‘EST’라는 글자를 써놓게 했답니다. 그런데 종복은 한 집의 술이 너무도 기막히게 좋아 특별히 EST EST EST라고 EST를 3개나 써 놓았습니다. 얼마 뒤 그 곳에 도착한 주교는 술맛을 감정하던 중 만취해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때부터 그 포도주에 ‘ESTESTEST’라는 이름이 붙여져 오늘날까지 명성이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포도주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고도 깁니다. 고대 이집트벽화와 앗시리아 유적의 상형문자에는 기원전 3500년에 와인을 마셨고 중국에서도 기원전 2000년에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50개국에서는 연간 250억병의 포도주가 생산돼 애주가들을 즐겁게 합니다. 포도주의 종류는 붉은 색의 레드와인, 흰색의 화이트와인, 분홍색의 로제와인이 있는데 레드와인은 육류, 화이트와인은 생선과 마시는 것이 상식입니다.
최근 갑자기 화제가 되고있는 보졸레누보는 프랑스 남부 브루고뉴지방의 보졸레 마을에서 생산됩니다. 주로 가메이라는 포도로 만들어지는 보졸레누보는 오래 숙성하는 보통와인과 달리 그 해 수확된 포도를 1,2개월 숙성시켜 11월 셋째주 목요일 자정을 기해 일제히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보통 포도주가 익은 김치라면 보졸레누보는 금방 버무린 겉절이인 셈인데 맛은 거칠지만 과일냄새가 가득하고 상큼한 것이 특징입니다. 루비처럼 선명한 붉은 색을 띄는 보즐레누보는 1954년 첫 출시된 이래 1년에 1억4000만 리터쯤 생산하는데 세계의 애주가들은 매년 가을 설레임속에 이 술이 출고되기를 기다립니다. 지난주 목요일 우리 나라에서도 와인애호가들이 전세계와 동시에 병마개를 열고 환호 속에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바로 그날 청주지법 2호 법정에서는 충청리뷰사태로 구속된 윤석위시인의 1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에는 1개월이 넘도록 지역사회를 달궈 온 사건답게 종교계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인사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보기 드문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마치 80년대 시국사건 재판을 연상시켰습니다.
젊어서는 반 독재 민주화투쟁에 헌신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문화운동으로 일관하던 그가 수의를 입고 피고인 석에 앉아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리게 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렇게 ‘죄인’이 되어 수갑에 묶여있는 것일까. 평소 동자 승처럼 천진하기만 하던 그 얼굴이 그림자로 덮인 것은 무슨 죄 때문이란 말인가. 법정은 긴장이 감돌았고 모두들 분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여성단체 회원들 중에는 눈시울을 닦는 이도 여기 저기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비극입니다. 이사회의 비극, 우리모두의 비극입니다. 새 천년, 새아침을 환호한 것이 언제인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구시대의 미몽(迷夢)을 깨어나지 못하고 부질없는 선문답(禪問答)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가해자였건, 누가 피해자였건 오늘의 이 사태는 우리사회 모두의 불행입니다.
납덩이가 내려앉을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11월의 하루가 저물면 이내 어둠이 내려옵니다. 그러면 냉기 가득한 찬 감방은 수인(囚人)들의 한숨 속에 이내 적막으로 휩싸입니다. 하지만 밤은 가고 아침은 다시 옵니다. 누군가 말했지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그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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