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생활 고스란히 담겨있는 '해인으로 가는 길'

   
보은군 내북면의 한 시골집에서 혼자 사는 도종환 시인이 시집 한 권을 보내 왔다.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刊)'. 시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연속에 파묻혀 살건만 쉬지 않고 시를 써 벌써 몇 권째 시집을 선보이고 있다.

이문재 시인은 도 시인에 대해 "그의 삶과 시는 화엄사상과 생태학이 만나는 또 하나의 꼭지점이다. 불교에서 가장 큰 깨달음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해인(海印)은 생태학적 삶이 추구하는 단순한 삶, 조화로운 삶, 일관성을 잃지 않는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시집의 제목인 해인은 바로 불교에서 나온 것.

시골 외딴집에서 지낸지 3년이 된 시인은 그동안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3년 동안 나는 세상으로부터 생략되어 있었다. 그렇게 지워지는 시간이 그러나 나는 좋았다. 내 몸이 정지신호를 먼저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귀한 시간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3년 동안 나는 그저 간소하고 단순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를 빈 밭처럼 내버려두었다. 전처럼 그 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 몇 모작을 할 것인가 궁리하지 않았다. 함께 모여 그 밭에서 농사지은 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토의하지 않았다."

처음엔 혼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사람사는 동네하고 멀리 떨어진 산속 외딴집은 적막하고 무서웠다는 것. 더욱이 시인은 적막하고 낯선 산중으로 유폐된 삶이 측은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신문과 TV와 인터넷이 없는 황톳집에서 어미 잃은 산토끼와 닭과 놀고 있으면 다람쥐가 툇마루에서 힐끔힐끔 들여다보는 생활을 한 시인은 마침내 스콧 니어링이 말한 '평온한 속도'의 삶을 살게 됐다고.

그의 시는 이런 생활속에서 탄생됐다. '해인으로 가는 길'의 대표 시 '산경'을 보면 이런 생활이 환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지인들은 그가 시골로 들어간 뒤 시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다행히 시인의 몸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는 또 주변의 간청에 못 이겨 올해 들어 몇 가지 직책을 맡았다. 민예총 청주지부장,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부이사장 등. 이 때문에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또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몸이 아픈 그가 안쓰럽지만 간간이 받아보는 시집은 더할 수 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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