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의 명성을 지켜온 고려인삼이 인삼의 주 소비시장인 중국 홍콩 등 동남아의 기호변화와 서양삼의 조직적인 공세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난 17일자 방영 KBS 일요스페셜은 충격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기자에게 각별한 인상을 준 것은 얼마전 충북인삼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기사(9월 14일자 246호)를 위해 벼락치기 인삼 공부를 했던 처지에서 더할 수 없는 민감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일요스페셜은 미국과 캐나다가 소위 서양인삼의 경작과 판매에 얼마나 치밀하게 나서고 있는 지를 영상매체의 특성을 십분발휘, 생생하게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기계화를 통해 대규모로 인삼경작에 나서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가 고려인삼의 종주국인 우리의 오랜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6년근이 아닌 3년근 인삼을 동남아에 대량 수출하고 있는 현실은 놀랍기까지했다. 값싼 가격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여나가는 그들의 상술은 물론, 미국의 경우 인삼에 대한 동남아인들의 인식지향을 적확히 꿰뚫어 장뇌삼을 전략적으로 재배하는 현장을 보면서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더구나 미국과 캐나다가 자국삼의 시장석권을 위해 고려인삼에 대한 근거없는 마타도어 유포에 나서고 있는 모습은 세계무역 시장이 전장터와 하나도 다름없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마당임을 새삼 실증했다.
하지만 고려인삼의 위기상황은 인삼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는, 오래된 ‘비밀’이었다. 충북인삼의 위기상황을 조명한 기획기사를 위해 만나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충북인삼뿐 아니라 고려인삼의 몰락을 걱정하고 있었다. 기자는 지방신문으로서 보도시각과 영역의 ‘로컬화’ 유지를 위해 충북인삼의 위기만을 주로 지적했지만, 인삼인들은 한결같이 ‘고려인삼이 동남아에서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다’거나 ‘정관장(한국인삼공사의 고유 브랜드) 제품의 경우 현지산 보다 5∼6배 이상 비싼 관계로 소비의 대중화에 실패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 등지에서 유사 정관장 상품이 판치는 상황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1000년 역사의 고려인삼은 실크로드처럼 ‘인삼길’을 통해 고려를 세계에 각인시켰고 오늘의 코리아라는 나라이름을 낳게 한,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흔치 않은 ‘명품’이다. 하지만 고려인삼은 조선시대 재정확보 수단으로 사실상 국가에 의해 독점되고 일제시대엔 아예 전매법으로 포위당하면서 다양한 제품과 마케팅 기법의 개발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해왔다. 이것이 인삼과 전혀 연관이 없던 북미국가들에 의해 ‘밀레니엄의 명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96년 전매법 폐지이후 농협은 한삼인(韓蔘印)이란 브랜드로 4-5년근 인삼의 수출에 나서는 등 인삼시장의 계층구조 다변화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역불급이다.
더구나 전매법이 폐지됐다고는 하나 장뇌삼이나 도내 벤처기업인 CBN바이오텍이 생산하는 배양산삼근 등에 대한 법적인 분류 근거조차 정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삼 후진국’ 우리의 현실이다.
고려인삼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생산량의 25%를 차지하는 충북인삼의 미래는 이대로 스러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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