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하청노조 37m 송전탑 고공시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복직 타결로 사측 부담 커져

도민대책위의 중재과정을 거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하이닉스&매그나칩 노사분규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17일 이른 아침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죽천교 인근 높이 37m의 고압선 철탑에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조합원 2명이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다. 하청지회 노조원 30여명은 철탑아래 죽천교 인근에서 농성을 벌이며 “조합원 전원의 원직 복직, 원청회사측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사실상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의 강경투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지난 13일 비정규직 노사분규의 대표적 사업장이었던 전남 순천 현대하이스코 하청노조가 1년만에 원청회사와 원직복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볼때 사업장 규모나 분규상황을 보면 차순위는 당연히 청주 하이닉스&매그나칩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하이스코의 노사분규 해결과정을 통해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를 전망해 본다.

하이닉스&매그나칩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사분규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꼴이다. 두 회사 모두 비정규 노동자들이 하청노조를 설립하자 재계약 상황을 만들어 사실상 집단해고 시켰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해 6월 하청회사 노동자 120여 명이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됐다.

하이닉스&매그나칩은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한뒤 파업에 돌입하자 하청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26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게 됐다. 물론 원청회사인 하이닉스측은 하청회사 변경을 통해 재입사의 길을 터놓았지만 사실상 노조를 포기하고 ‘백기투항’하는 셈이었다. 결국 회사측은 압력과 회유를 통해 상당수의 노동자는 재계약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조합원은 110여명이다.

1년이상 장기분규에 시달려온 두 회사는 하청노조와 한차례 협상국면이 조성됐다가 다시 사태가 악화된 점도 유사하다. 현대하이스코는 지난해 11월 전국금속노조, 하청노조, 하청업체, 순천시가 마라톤 협상을 벌여 노동자의 복직에 합의한 확약서를 만들었다. 심지어 해고 노동자 재취업을 위해 지역 상공회의소, 순천시, 하청업체, 민노총 등이 참여하는 취업대책위원회를 구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청업체가 인력을 확대고용하기 위해서는 원청업체가 일감을 늘리던가, 납품단가를 높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원청업체인 현대하이스코의 소극적 태도로 확약서 내용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타협국면에 젖었던 하청 노조원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고 마침내 지난 1일 서울 현대차그룹 본사 신축사옥 크레인에서 노조원 2명이 고공농성을 벌여 타협을 이끌어 냈다.

하이닉스&매그나칩은 청주공장앞 도로변에서 수개월동안 천막농성을 벌였고 서울 본사 상경투쟁, 충북도 중재촉구 시위를 이어갔다. 마침내 지난 2월 중재위원회(위원장 강태재)가 중재역을 맡기로 하고 하청 노조원들은 천막농성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중재위가 마련한 협상테이블에 외국계로 매각된 매그나칩 관계자는 불참했고 하이닉스는 재고용에 대해서는 완강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동안 중재위는 노사 양측을 번갈아가며 9차례 간접대화를 나눴으나 3개월째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답답한 상황에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조는 지난 4월 무심천 대교 난간위에서 시위를 벌인데 이어 2차로 목숨을 건 송전탑 고공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에대해 중재위 강태재 위원장은 “사태의 긴박성 때문에 오늘(17일) 오후 대책위원 5명이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하이닉스는 고용불가, 위로금 지급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매그나칩은 협상 책임자인 한국계 전무가 미국인으로 교체되면서 대화국면이 더 어렵게 됐다. 그동안 물밑대화를 통해 하이닉스측에 ‘선별고용’(위로금을 거부한 조합원에 한해)이라도 받아들이도록 요구해왔다. 현대하이스코 타결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하이닉스&매그나칩의 노무관리는 현대하이스코보다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노동부는 하이닉스의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일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불법파견이라면 정규직 전환이 당연하지만, 회사측은 상응한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부로부터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하지만 검찰은 회사측 수사는 ‘뜸’을 들이고 가두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은 무더기 기소해 현재까지 29명의 하청 노조원과 8명의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법정에서 총 50년 6개월형을 받았고 벌금액수도 1억3천만원에 달한다. 현대하이스코도 하청 노조원을 상대로 72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손배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에 단계적 복직과 소송취하도 합의했다.

한편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하이스코가 지난 13일 전원복직에 합의한 것은 비정규직 노사문제는 ‘노사대화’가 사태 해결의 최선의 방법임을 확인한 것으로, 이제 하이닉스가 노사 직접 교섭에 나오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명분이 없다”며 성실 교섭을 촉구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 9명이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오는 6월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 노조를 지원하는 지역 및 금속노조 총파업을 예고해 송전탑 고공시위가 장기화될 경우 여름철 지역 노동계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현대하이스코의 합의는 대기업 하청업체의 노사문제는 결국 원청업체가 직접 나서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청노조가 송전탑 시위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처럼 이제 하이닉스&마그나칩이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현대하이스코와 전국금속노조는 지난 13일 해고자 108명을 6월말 30%, 12월말 30% 내년 6월말 40%씩 단계적으로 모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밖에 손배소송 취하, 곳소고발 건 취하, 자유로운 노조활동 보장 등에 합의했다. 다음은 합의서 전문이다.

-합의서-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협력업체 폐업 등으로 인한 실직자(해고자)의 취업을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실직자 채용
(1) 대상자 :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협력업체 실직자 117명 중 기채용자 9명을 제외한 108명
(2) 채용주체 : 현대하이스코 사내협력업체
(3) 채용시기 및 규모 : 입사희망자 전원 / 2006년 6월 30일까지 30% 입사 / 12월 31일까지 30% 입사 / 2007년 6월 30일까지 40% 입사
2. 손배소 건
2007년 주총을 거쳐 취하하되 취하 전에도 가압류 등 민형사상 손해가 없도록 한다.
3. 고소고발 등의 건-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협력업체, 현대하이스코는 상호간에 제기한 일체의 고소고발 사건 및 진정, 구제신청 사건을 취하하며 사법처리와 진행자에 대해서는 노사 공동으로 합의 탄원서를 제출한다.
4.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협력업체는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협력업체 사무실이 있는 곳에 조합 사무실을 둔다
5. 현대하이스코는 현대하이스코 협력업체와 금속노조가 합의한 상기사항을 적극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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