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건 치열한 입법 투쟁 결실에 만감 교차
요즘들어 백상기씨(50)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못하는 술이지만 소주 반병 정도를 비우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담배를 꺼내 피우다 보면 어느 새 아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10년동안 인생을 걸고 ‘상가임대차 보호법’ 입법투쟁에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 지난달 30일 법사위를 거친 ‘상가임대차보호법안’이 마침내 12월 5일 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해서 오랜동안의 숙원을 푼 기쁨과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외로운 입법투쟁의 과거가 자꾸만 떠오른다. 또한 변제해야할 빚이 있어 집 걱정이 앞서는 것도 잠못이루는 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요즘들어 언론의 취재 요청도 많고 ‘임차인상인연합회’ 사람들의 기념 촬영 요구가 부쩍 늘어났다. 허나 백씨는 두가지다 응하기에는 몸이 모자란 상태며 자신의 채무변제일이 임박함에 따라 보증인과 돈을 구하느라 시간을 낼 겨를도 없다. 언론에 대해서는 “상가 임대차 보호법의 제정을 위해 저에게 힘이 돼 주었다” 면서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취재 부탁을 들어주고 있다. 기념촬영에 대해서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며 사양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미뤄둘 수 만도 없어 이것도 곤욕이다. ‘임차인상인연합회’ 사람들의 “국회를 배경으로 사진 한 방 찍어야 한다” 는 전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빚뿐’이지만 이런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까지 백씨는 한번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백씨가 ‘상가 임대차 보호법’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장마차를 꾸려나가며 모은 돈으로 15평 규모의 횟집을 시작하려던 백씨는 권리금 1400만원에 임대 보증금 300만원을 주고 가게를 차렸다. 그런데 1년이 지나 계약 만료가 되자 건물주는 꼭 두배인 보증금 600만원에 월 60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당황한 백씨는 고민을 하다 1주일후에 계약을 하러 찾아갔으나 이번에는 월 70만원을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더이상 횟집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됐다고 판단한 백씨는 생활정보지등 가게를 사겠다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다시 건물주를 찾아갔다. 그러자 건물주는 자기가 가게를 쓰겠다며 이번에는 백씨가 가게를 넘기려는 것까지 방해했다. 이렇게 건물주인은 임대료를 터무니 없이 올리는등 횡포를 일삼다가 자신이 건물을 쓰겠다면서 아예 백씨를 쫓아 낸 것이다. 이때 백씨는 권리금 1400만원은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임대보증금으로 냈던 단돈 300만원만을 받고 가게를 비워줘야 했다.
93년 10월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백씨가 영세상인의 권리를 위해 외로운 입법투쟁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이런 개인적인 아픔이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96년 ‘점포 임대차 보호법 추진위원회’를 청주에서 결성하고 위원장을 스스로 맡게 되면서 백씨는 비로소 입법운동에 탄력을 얻게 됐다. 또 서울 ‘임차인상인연합회’의 결성은 그에게 동병상련의 동지가 돼 주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혼자였다. 그의 사무실의 흔적들이 그가 외로운 투쟁가였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씨의 얼굴에서 그늘이 서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쁨 반 눈물반의 미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자식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 이라는 생각에 이세상 어느 재벌보다도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씨는 “청주에서 이런 입법투쟁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같이 투쟁하고 자문해 주었던 서울의 ‘은마상가번영회’는 지금 점포주인과 분쟁이 거의 없습니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인데도 말입니다. 또 서울의 ‘임차인상인연합회’도 단결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주에서는 유독 홀로 싸워야 했습니다”라며 ‘나홀로 투쟁’의 어려웠던 때를 회고 했다.
백씨의 이런 활동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 되었는데 총 2000여 회에 이르고 있으며 그동안의 투쟁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백씨에게는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이며, 자랑인듯 코팅을 하여 책으로 엮어 보관하고 있다. 또한 자식에게는 “아버지는 이렇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백씨가 10여년 동안의 인생을 걸고 ‘상가 임대차 보호법’ 입법마련에 성과로 얻은 것은 빚뿐이지만 그것이 백씨의 훈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백씨는 15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오늘도 밤을 세울것이다.


“임대 계약시 원상복구 조항 없애야”
‘상가 임대차 보호법’등 민생법안의 조속한 심의·의결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상기씨는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 이 시행되면 발생할 문제가 눈앞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같이 투쟁한 ‘임차인 상인 연합회’ 사람들이 새로 제정된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재판중인 사건은 혜택을 못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행일이 늦어질 경우 ‘상가 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백씨는 계약서에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현재는 “상가 임대 계약 서식이 없어서 주택임대계약 서식을 이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원상복구 조항이 있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주택의 원상복구 수준이야 도배만 새로 하는 것이지만 점포의 경우 인테리어 자체를 다시 바꾸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상인에게는 살인적”이라고 덧붙였다.
또 권리금의 환수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다른 상인이 들어 오지 않을 경우 권리금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5년간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전대(기간내에 다른 상인에게 권리금을 받고 나가는것) 를 위한 안전장치는 못되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안에는 ‘임차인(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에 대하여 임대인(건물주)은 정당한 사유없이 일정기간(5년) 거절하지 못한다’ 고 돼 있어 임차인이 악용할 소지가 있으며 계절, 유행, 판매실적에 따라 매장 주인이 바뀌는 백화점과 할인점도 이 법안 적용을 받기 때문에 건물주 측에서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에 대해 백씨는 “법안이 건물주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지만 영세 상인에게는 꼭 필요한 법”이라고 말하면서 “새로 시행되는 상가임대차 보호법 때문에 지금보다 할일도 많아 질 것이고, 상담도 더 많이해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 곽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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