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 단양 곡계굴 민간인 학살 현지 설명회

“잘못 말하면 빨갱이로 몰릴까봐 그동안 아무 말도 못했어요”

1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의 충북 단양 곡계굴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현지조사 설명회에 참석한 유족들은 지금까지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1.4후퇴가 한창이던 지난 1951년 1월20일 어처구니 없는 미군의 폭격으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지 반백년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연 첫 마디다.

360여명(유족 주장)의 무고한 피난민이 사망한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정부차원의 조사가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오후 1시 단양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설명회에는 영춘면 지역 주민과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엄한원(72) 유족회장은 “52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정부차원의 조사가 결정돼 다행”이라며 “진실위가 억울하게 숨진 양민들의 한을 풀어주고 정부가 위령탑을 건립해 억울함을 달래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유족들은 군사정권 등을 거치는 동안 잘못하면 빨갱이로 몰릴 것을 우려해 조사요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고 술회한 후 그동안 유족회 차원에서 조사된 사건의 진상을 소개했다.

또 열린우리당 서재관(제천.단양) 국회의원은 진실위의 곡계굴 사건 조사개시 결정에 대해 “50년 넘게 가슴 속에 묻어뒀던 아픔을 밝히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설명회에 이어 진실위 집단희생조사국 조사관들과 유족들은 영춘면 곡계굴 현지를 찾아 현재 5명 뿐인 생존자들을 상대로 증언을 청취하고, 사건 현장을 둘러봤다.

이영일 진실위 집단희생조사국장은 “집단희생 진상조사가 굉장히 늦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며 “진실위는 국내외 모든 자료를 뒤져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유족들에게 약속했다.

곡계굴 피폭 사건은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을 피해 남하하다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로 숨어든 무고한 피난민 360여명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이 국내에는 남아있지만 않지만 지난해 6월 미 10군단이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2월 말부터 51년 1월 말까지 강원, 충북, 경북 일원에 네이팜탄을 퍼부어 민간인 4440명이 희생됐다는 미 CIA가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군은 당시 산골마을을 인민군의 보급원으로 간주하고 단양과 예천, 영월 지역을 대상으로 이 ‘싹쓸이 작전’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