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극장, 헨릭 입센 사후 100주년 기념공연 ‘인형의 집’무대에 올려

“편지를 넣는 장면이요, 좀더 리얼하게 가야죠. 그리고 노라에게 사실을 폭로하는 부분이 좀 약한 것 같아요.” “지금 잘하고 있는데 조금 더 서브텍스트를 찾아보세요.”
오후 8시. 소극장 너름새에서는 차분한 존댓말로 조근조근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5월 18일부터 28일까지 청년극장의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연출을 맡은 서원대 영상미디어학과 홍재범 교수다.

공연이 얼마남지 않아 요즘 연습은 밤 11시를 훌쩍 넘어 끝난다. 홍재범 교수는 연출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노라의 남편 ‘헬머’역도 맡았다. 이날 연습은 ‘노라’역을 맡은 이미영씨와 크로구스타역 조재평씨의 신경전부터 시작됐다. 크로구스타가 노라의 비밀을 담은 편지를 남편인 헬머에게 붙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장면이다. ‘인형의 집’에는 이들외에 ‘린데’역의 김지현씨, ‘랑크’역에 홍준표씨가 출연한다.

▲ 이날 연습은 ‘노라’역을 맡은 이미영씨와 크로구스타역 조재평씨의 신경전부터 시작됐다. 크로구스타가 노라의 비밀을 담은 편지를 남편인 헬머에게 붙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장면이다. “인형의 집, 사랑에 미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그동안 페미니스트 연극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올해는 헨릭 입센의 사후 100주년이고, 충북에서는 ‘인형의 집’을 최초로 무대에 올린다. 또한 홍교수에게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연출작이자 배우로서 처음 지역무대에 서는 것. 여러가지 부담스러운 상황일텐데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온 일이라 심적인 부담은 없습니다. 인형의 집을 첫 공연작으로 선택한 이유도 가장 자신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인형의 집’이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전 이 작품에서 여성해방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은 사랑에 대한 미숙함 때문이죠. 그렇다고 ‘사랑의 기술’을 연극을 통해 설파하는 것은 아니고요”라고 부연설명했다. 홍교수는 사실 연기만 하고 싶었는데, 이러한 연출의 의도가 어그러질까봐 연출까지 덜컥 맡게 됐다는 것. ‘인형의 집’은 변호사의 아내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노라가 남편을 위해 거짓서명한 일로부터 사건이 발달된다. 이로인해 크로구스타가 신용을 잃게되고 노라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모든 사실은 알게 된 헬머는 노라를 떠나고, 그사이 크로구스타는 옛연인이었던 린데를 만나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고 모든 것을 수습하려고 한다. 헬머도 다시 노라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지만 노라는 자신의 삶이 ‘인간’의 삶이 아닌 ‘인형’의 삶이었음을 자각하고 집을 나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다는 내용이다. 홍교수는 “연출로서 또하나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모든 인물들이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죠. 무대위에서 남이 써준 대사를 토시하나 안 틀리고 말하는 것은 말을 옮기는 것 밖에 안돼죠. 따라서 상황을 숙지하고 서사적인 내용들은 배우들이 스스로 채워가도록 하는 ‘에쭈드(etude)’를 적용했어요. 사실주의 연기방법의 정수인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한 방법이죠.”교수와 배우사이, “무대에선 모든 스트레스 풀려” ▲ ‘인형의 집’연출을 맡은 서원대 영상미디어학과 홍재범 교수
홍교수는 서울대 국문학과 85학번으로 대학교때부터 희곡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만해도 희곡 전공 교수가 없어서 혼자 공부를 했고, 또 이론만 공부하다보니 현장에서 ‘실전경험’을 쌓고 싶어져 94년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고 한다. “극발전연구회라는 배우모임에서 첫 경험을 쌓게 됐어요. 당시 운이 좋은 건지 나쁜건지 남자배우가 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첫주연을 맡게됐죠. 너무 떨려서 발꿈치를 땅에 디디지도 못하고 30분동안 무대에 서 있었어요. 대사도 웅얼웅얼 거렸지만, 그때의 희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극의 ‘단맛’을 본 그는 그후 기회만 있으면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홍교수는 동대학원에서 ‘한국 대중비극과 근대성의 체험’으로 박사 과정을 마치고 34살에 ‘미추연극학교’에 들어간다. 이후 국립극단 연수단원으로도 1년동안 활동했다. “스무살 어린 후배들과 연기를 함께 했죠. 연극판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졌지만, 사실주의 연기의 정점을 배울수 있었던 시기였죠.”

이렇게 이론과 실전경험을 두루섭렵한 홍교수는 2003년 서원대 미디어창작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후 과이름은 몇 번 바뀌었고, 내년에는 드디어 연극영화과로 신입생을 뽑는다고 한다. ‘달마야 서울가자’의 육상효 감독도 같은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이들의 결합이 서원대 연극영화과의 새로운 출발을 어떻게 써내려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교수와 배우사이. 그는 “교수로 받는 스트레스를 연극하면서 다 날려보낸다”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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