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만 찾아 떠나는 철새들의 왜곡된 여정
“여론 빌미 당적 이동은 17대 총선이 ‘저승사자’ 될것”

선거 때면 나타나는 정치 철새들의 움직임이 충북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끈다. 정치인들이 어떠한 명분을 동원하더라도 당을 옮기는 행위는 양지를 찾아 나서는 철새의 행동양식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자연의 철새가 이동할 시기를 최우선으로 택해 움직이는 반면 정치철새는 이동시기 뿐만 아니라 바람, 즉 분위기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 포장된 명분일수도 있지만 결국 지향점은 똑같다. 최종 목적지는 둘다 양지(陽地)다.
정치인들의 당적 이동과 관련, 충북 국회의원들도 일찌감치 요주의 대상이 됐다. 전국구를 포함 모두 8명의 국회의원중 한나라당 신경식 윤경식 심규철 의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의원들이 급변하는 정치환경과 맞물려 거취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민주당 홍재형의원(청주 상당)과 자민련 송광호(제천 단양) 정우택의원(괴산 진천 음성)의 향후 선택을 놓고 지역 정가의 예단이 시시각각 요동침으로써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만큼 이들의 속내를 엿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당사자들의 결단시기가 거의 ‘꼭지’에 와 있는 상태다. 세명 모두 지역의 여론을 탐문하면서 최종 선택에 고민중이다.

탈당 명분구축 위한 수순밟기?

송광호의원 같은 경우는 지난 11일 지역구의 사회단체 대표 13명이 한나라당 입당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 외견상으론 한나라당행을 위한 명분 쌓기가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비쳐졌다. 성명에 참여한 인사들은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대변하는 계층으로 노인회장 문화원장 여성회장 재향군인회장 예총지부장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자유총연맹회장 경우회장 생활체육협의회장 민통회장 이북5도민회장 통장협의회장 엽연초생산조합장 한국부인회장 기업인회장 등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탈당명분을 구축하기 위한 수순밟기가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홍재형의원은 지난 16일 민주당 도지부장 사퇴서를 중앙당에 제출했다. 홍의원은 사퇴 이유에 대해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선거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연직 충북선거대책본부장인 충북도지부장을 사퇴한다”면서 “아직 노무현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밝혀 그동안 자신이 견지해 온 비노(非盧)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만약 홍재형 송광호 정우택의원이 소속정당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지금으로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역구민의 여론을 앞세울 공산이 크다. 국회의원들의 당적 변경은 자칫 당사자의 정체성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명분 구축을 위해 주변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6. 13 지방선거 땐 이원종지사가 이 전법을 적절히 구사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자민련 소속으로 한나라당 입당을 모색하던 이지사는 한번 탈당했던 당에 다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도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도의원, 지구당위원장들의 방문을 잇따라 받아들여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제의를 밖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질 철새논란을 희석시켰다. 이에 힘입어 이지사 본인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신의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당을 옮기면 심판받는다”

그동안 탈당설에 휘말렸던 홍재형 송광호 정우택의원이 결국 탈당을 결행한다면 향후 도내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조짐이다. 민주당은 이른바 대표주자를 잃는 꼴이고 자민련은 충북에서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특히 이들이 행동을 미룬채 마지막까지 ‘뜸’을 들임으로써 자민련의 경우는 그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운신과 관련된 최근의 분위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지역의 한 시민운동가는 “탈당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소신에 따라 결행해야지 누구(?)처럼 주변 사람을 팔아먹는 추한 꼴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인들이 제 아무리 좋은 명분을 둘러대도 결국은 조건이 좋은 정당을 택해 17대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저의밖에 더 되느냐. 좀 더 솔직해졌으면 한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일부 관변단체 등 주변의 여론을 앞세워 당을 옮기겠다는 발상은 냉정히 생각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당장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게 정치인데 17대 총선까지는 정치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않느냐. 한 지역에서 일방 통행식의 정치성향을 조성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런 추세라면 ‘자민련 텃밭’으로 상징됐던 과거의 지역적 이기주의를 답습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21세기 한국정치연구소 김광식소장(한국정치신문 대표)은 이 문제에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특정 정당에 대한 막무가내식 쏠림현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잉태한다고 단정한다. “지금 민주당이나 자민련 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속속 들어가는데 이는 총체적으로 보수정치의 강화를 의미한다. 보수건 진보건 한 쪽으로 치우치면 곤란하다. 지방의 정치구조에서도 여야의 개념이 정착돼야 정상이다. 특정 정당의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그 쪽으로 몰리는 지금의 현상은 정상이 아니다. 여당과 야당의 역할분담이 무너지고 있고 이는 결국 정치가 가장 경계해야할 일종의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고 경계했다.

16대 총선 때 철새들 대부분 낙선

국회의원들이 당을 옮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선거 때의 변수가 가장 크다. 차기 총선에서의 당선이 목표인 그들로선 기회를 봐서 잘 나가는 정당을 택하는 게 나름대로는 ‘결단’일수도 있다. 그러나 옮긴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97년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거 집권당인 민주당으로 옮겼다. 2000년 4월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가 낙선의 고배를 마심으로써 민심의 혹독함을 경험했다. 이와 관련, 지역의 한 정치 전문가는 최근의 사례를 들어 정치철새에 경종을 울렸다. “얼마전 자민련을 탈당한 오장섭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이 제지당했다. 그러나 언젠간 들어 갈 것이다. 당사자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자민련의 원내총무와 사무총장까지 지낸 그의 배신에 아마 혹독한 시련이 쏟아질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자 약삭빠른 한나라당 의원들이 왕창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민심은 16대 총선에서 그들을 심판했다. 이성호(경기 남양주) 서정화(인천) 이강희(인천) 등이 그 상징적 사례다. 지금 당을 바꾸려는 의원들이 그 어떤 이유나 명분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기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선 당을 왔다갔다하는 정치인들은 무조건 심판해야 한다. 정치철새들이 현재보다 나쁜 조건의 당을 택해 당적을 옮기는 경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들을 심판해야 하는 당위성은 바로 이것이다. 정치인이라면 음지에서 일할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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