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후보단일화가 감격적일 수 있는 이유

제가 다니는 회사는 평소 일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해야 하는 근무조건 때문에 1년에 두 번씩 별도의 휴가가 있습니다. 보통 일주일 정도 쉬게 되는데 휴가를 가기 전에는 업무인수인계서라는 것을 씁니다. 휴가 기간 동안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동료들에게 일을 나누어 맡기고 가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묘한 데가 있어서 막상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했을 때 내가 자리를 비운 한 주 동안 아무 일 없이 업무가 잘 진행되었고, 동료들에게 맡겼던 일들이 잘 해결되어 있으면 어쩐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소에는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내가 없는 동안에도 회사가 평소와 다름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그게 개인적으로는 못 마땅한 것입니다.
며칠 전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 한 사람이 다른 회사로 옮겨 갔습니다. 평소 워낙 유능하고 일 잘하던 사람이라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헤어지는 아쉬움보다는 진행되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기 전에 해오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후임자에게 넘겨주었고, 구축해 놓았던 업무의 성과나 자료들이 이미 팀원 전체의 것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빈 자리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후임자 역시 시스템에 이미 적응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 처리에 무리가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경우가 있으면 회사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결국 몇몇 개인의 실수에 의해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의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라는 말은 자랑이 아니라 흉인 것입니다.
사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정치인들의 전매특허입니다. 우리는 87년 양김씨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인해 둘 다 실패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가 탈당을 해서라도 대선에 도전을 했습니다. 어느 당의 대선 후보 부인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권해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16일 새벽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전격 합의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격해 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이번 단일화가 결단으로 볼 수도 있고, 야합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접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에만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 두 후보의 합의는 정치와 정치인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후보의 후보단일화 합의가 뜻 깊고, 감격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