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각 대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선거가 아닌 대통령 선출을 위한 투표함에 학생들이 줄지어 늘어선 진풍경이 연출된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 무관심했던 학생운동 진영도 특정후보 ‘낙선·당선’ 운동을 벌인다. 전국적으로 20∼30대의 정치 냉소주의의 벽을 허물기 위한 ‘Vote Festival’이 열린다. 20여개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포털사이트를 통해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위한 ‘온라인 100만 유권자 모집’에 나선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만18세)들도 선거일에는 일찌감치 책가방을 싸들고 나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대학생·청년단체들이 그려본 오는 12월 대선의 새로운 풍속도다.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뛰고 있지만, 어디까지 실현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쯤 되면 정치인들이 그간 ‘물’로 보았던 20∼30대 유권자를 달리 볼 수밖에 없다. 청년단체들은 이 기회에 ‘청년 공약’을 제시하고 각 대선 후보들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을 타진한 뒤, 표로 심판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학생·청년단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10월 22일 ‘2030유권자네트워크 Vote Festival’이 출범하면서 힘을 받기 시작했다. 2030유권자네트워크에는 대학내 단체뿐만 아니라 청년 단체들도 포함돼 있어 유권자 운동이 대학교 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됐다.
우선 2030유권자네트워크는 유권자네트워크 홈페이지(www.votefestival.org)와 대학생인터넷신문 UNEWS 홈페이지(vote.unews.co.kr) 등을 통해 ‘이번 대선에서 꼭 투표를 하겠다’는 청년들의 서약을 받고, 이들이 다른 친구들에 e-mail로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e-mail 릴레이 서명운동’을 벌임으로써 선거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을 높일 계획이다.

2030유권자네트워크 등 출범

이를 기반으로 대학생과 생활 청년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10대 과제를 선정한 뒤 후보자의 의견을 묻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이와 관련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년들이 ‘선거가 자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2030유권자네트워크의 목표다.
이 외에도 청년들이 투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자선거인명부제 도입, 부재자 투표 신청절차 간소화와 투표소 확대 등의 투표제도 개선활동을 내용으로 하는 ‘투표 할게, 제도 바꿔‘ 운동도 같이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유권자운동은 2030유권자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대학교 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학생의 정치참여에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집단은 대학생들의 입과 귀를 책임지고 있는 대학언론인들.
이들은 지난 9월 13일 ‘대학생 정치참여를 위한 대학언론인 운동본부’(이하 대학언론인운동본부)를 발족하고 대학생유권자운동에 불을 붙였다. 우선 대학언론인운동본부는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연예인(김미화, 권해효 등)과 동아리 회원(충주대 동아리 ‘해동 검도’, 서울대 힙합 동아리 히스(HIS) 등)들 인터뷰를 각 대학언론 매체에 싣는 것을 초기 사업으로 정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일단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앞세워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투표한다’는 것을 보여준 뒤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공명선거와 정치참여를 주제로 한 포스터와 배너광고 응모전 등 학생들의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번 유권자운동은 운동권 학생들뿐만 아니라 비운동권 학생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고 특히 지역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유권자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학교만도 6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상지대, 국민대, 서울여대, 가톨릭대, 성균관대, 중앙대(안성), 고대(서창) 등 10여 개대 소속 대학생들로 구성된 참대학 유권자운동본부(Vote People, 참대학 운동본부)도 지난 10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부재자투표소 설치를 비롯한 유권자운동을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고려대와 연세대에서는 대학생들의 투표율을 높기 위해 부재자 투표소 설치 홍보와 ‘대선후보 바로 알기’ 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다.

특정후보 지지·반대 운동도

고려대학교의 경우, 생명환경대 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를 포함한 5개 단체가 모여 ‘대학생유권자캠페인 promise(약속) 1219’를 만들어 유권자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대원(고려대 생명과학부 4년)씨는 “평소 유인물을 나눠주면 안보고 버리는데 대선후보 정책을 비교한 이번 팜플렛은 수업시간에 토론자료로 활용되기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며 학생들이 유권자운동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처럼 대선을 앞둔 대학생 유권자운동과 달리 특정후보 ‘낙선운동’도 계획되고 있다. 한총련은 유권자운동과 함께 ‘반이회창’ 투쟁과 ‘우리 후보’(권영길 후보)지지·지원 활동과 같은 특정후보 지지·반대 운동도 벌여나가고 있다.
서총련은 이미 8월 13일부터 이회창 후보 대선출마 반대 대학생 6150인(6·15 남북공동선언을 의미하는 수) 선언운동에 들어갔고, 지난 10월 18일에는 이회창 후보 대선 출마 반대에 서명한 학생이 1000명을 돌파해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또 지난 10월 31일 건국대 새천년관 앞에서는 대학생 7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병역비리를 저지른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 한총련은 지난 10월 28일부터 4일 동안 실시한 ‘이회창 대선후보 사퇴를 묻는 총투표’ 결과 발표와 법학부 학생들의 이회창 후보 반대선언 등도 계획하고 있다.
한총련은 특정후보를 반대·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에 2030유권자네트워크와 연대 할 수 없었지만,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 문제에 있어서는 같이 대응해 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에 대해 청년층 유권자 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단체들이 모두 연대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 부재자 투표를 해야 할 대학생(54만여명) 가운데 6.5%(3만 5천여명)만이 투표에 참가했을 정도로 부재자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
대선유권자연대 김박태식 간사는 “대학생들의 부재자 투표율이 낮은 것은 두 가지 이유라고 보여지는데, 하나는 대학생들이 부재자 투표신고 과정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상당히 귀찮아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내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오는 30일에 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부재자투표의 요건과 방법, 시기에 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 줄 것과 대학 내 부재자 투표시설 설치시 필요한 편의시설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2000명 이상의 부재자투표신청서를 받아 11월 안에 부재자투표함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2030네트워크와 한총련은 우선 각 대학 내에서 25일까지 해당 선관위에 접수하고 12월 8일까지 각 대학총장 명의의 협조공문을 선관위에 보내면 대학 부재자투표 신청자가 2000명이 넘을 수 있도록 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대학내 부재자투표함 설치에 총력

뿐만 아니라 2030네트워크와 한총련은 학생들이 해야 할 부재자투표 신청 절차를 대행해 주고 학생들이 학내에서 부재자투표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선관위에서 보낸 투표용지를 개인에게 전달하는 과정도 2030네트워크와 한총련이 도맡아서 할 계획이다.
지난 30일 중앙선관위가 ‘2002 대선유권자연대’와 유권자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학생 대표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예산 범위 내에서 대학 내 부재자투표소를 최대한 설치하겠다”고 밝혀 대학 내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운동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청년들의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이끌어 정치 개혁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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