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남겨 놓고 혼미 속에 대선 후보들의 발걸음이 어지러운 요즘 시중의 화제는 단연 협객 김두한을 다룬 SBS의 '야인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50%대의 놀라운 시청률로 안방을 달구고있는 이 드라마는 주먹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을 극화했다는 점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에 매어두는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실존했던 인물을 드라마 화 하다보니 주인공이 '주먹'의 대부로만 비쳐지고있지만 실제 김두한은 두 차례나 금배지를 달 정도로 정치적 역량을 보였습니다.
필자는 김두한이 65년 11월 9일 서울 용산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돼 3대에 이어 두 번째 국회에 들어 와 66년 9월 22일 오물투척사건으로 의원직을 물러 날 때까지 그의 의정활동을 가까이 서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때아닌 '김두한 바람' 속에 30여 년 전 그때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날도 국회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10시 개회를 앞두고 의원들이 속속 모여드는 가운데 김두한의원도 무엇인가 보자기에 싼 박스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의원들은 흔히 회의서류를 보자기에 싸들고 다니므로 누구도 김의원의 손에 들린 물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본회의가 개회되고 대 정부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공화당의 이만섭, 신민당의 김대중의원에 이어 한독당의 김두한의원이 발언대에 섰습니다. 그의 바로 오른쪽에는 정일권국무총리가, 그리고 그 옆으로 국무위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이슈는 삼성재벌의 사카린밀수사건 이였는데 의원들의 질의는 주로 정부가 재벌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데 모아졌습니다. 발언이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김의원이 노끈으로 묶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박스를 풀어 플라스틱통을 꺼내더니 "여러분, 이것은 국민의 사카린 올 시다"하고 난데없이 고함을 지르면서 옆에 앉은 정총리의 안면에 냅다 쏟아 부었습니다.
정총리의 얼굴과 양복은 순식간에 똥물로 뒤 덮여 엉망이 됐고 돌발사건에 놀란 회의장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날벼락을 맞은 정총리는 황당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그러나 침착하게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습니다. 뒷 얘기지만 김의원은 하루 전 집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 담아 두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내각이 총 사퇴하는 파문을 몰고 왔고 김두한은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그는 71년 총선 때 수원에서 한차례 더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낙선하고 72년 11월 21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54세.
좌충우돌하는 성격의 김두한은 눌변에 조리는 없었지만 국회 발언은 많았던 편입니다. 3대 민의원과 6대 국회 임기 중 27차례에 걸쳐 본회의 발언에 나섰는데 동서남북을 오가는 횡설수설은 그때마다 웃음을 자아내곤 했습니다. 그는 국회에 나오면 곧잘 의석 바로 위 기자석을 향해 "기자 님들! 안 그렇습니까?"하고 무슨 뜻인지, 뚱딴지 같이 소리를 지르는 '괴짜'의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간지도 한 세대가 지났는데 폭력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영웅시 되어 때아닌 인기를 누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것은 우리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내재돼있는 폭력성 때문은 아닐까. 가정폭력, 학교폭력, 거리의 폭력을 넘어 정의의 보루라는 검찰에서조차 폭력으로 피의자를 죽게 만드는 나라이고 보니 국민들의 의식 속에 폭력이 알게 모르게 일상화되고 급기야 그 폭력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는 말입니다.
폭력은 어느 경우에도 미화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폭력이 해결방법이 돼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야만의 짓입니다. 폭력이 만연된 사회는 비극의 사회입니다.
불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중생의 어느 하나도 괴롭히지 말라"고. 오늘 눈곱만한 힘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삼가 새겨봐야 할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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