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국내 유일의 국가기간산업체

1959년 충주시 목행동에 건설한 충주 비료 공장은 22만평 부지 위에 수만평의 건물과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당시로선 최신식 공장으로, 요소 비료를 생산함으로써 외화 절약은 물론 고용증대 및 비료 자급 능력 향상 등 국민 경제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충주 비료 공장은 순수 우리 기술로 건설한 괴산 발전소와 1957년 준공된 문경의 시멘트 공장을 연계한 산업 시찰 코스로 지정되어 매일 수백명의 산업 시찰 관광객들이 찾아와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 대표 산업체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 미국 공보원이 발행한 ‘자유 세계’책자에 게재된 사진과 글을 보면 충주 비료 공장 준공식에 800여명의 정부 고관과 외국 사절단이 참석했고 규모와 시설면에서 세계적인 시설로 소개됐을 만큼 당시 우리나라 산업체로선 국내외의 대단한 관심과 기대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증축된 공장을 돌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설 증축과 함께 요소비료 생산에 박차를 가한 충주비료공장을 돌아보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맨 왼쪽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박종규 경호실장, 안전모 쓴 사람이 민기식 충주비료사장, 맨 오른쪽은 신동관 경호과장이다. 박대통령 바로 뒤는 박충훈 상공부장관, 상공부장관 뒤로 얼굴이 반만 보이는 사람이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 이 중 민기식, 신범식씨는 충북출신이다. 그리고 충주 비료 공장에 대해 5가지 항목을 들면서 한국 경제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소개했는데 첫째, 이 공장은 이미 862명을 공장 직원으로 채용했는데 그 중 686명을 대졸 사원으로 뽑아 세계와도 경쟁할 수 있는 인적 구성으로 양질의 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점을 들었다. 둘째, 한국 농촌으로 부터국내 비료 공급원으로 신뢰 받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1961년 5월 까지 이미 3만 5000t이 생산됨) 셋째, 외국제 비료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한국의 외환을 절약했고 공장을 가동하면서 필요한 연료와 포장지 등을 사용하면서 협력 기업체가 생겨나 한국 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을 들었고 넷째, 충주 비료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료 판매액이 매일 3200만환에 이르고 매년 120억환에 달하는 판매고로 지역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원활한 연료 및 자재 공급을 위해 기간 시설이 확충되고 정비되면서 물류 발전을 앞당기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상 5가지 항목과 같이 충주 비료 공장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또한 낙후된 지역 경제에도 많은 활기를 불어 넣어 줬다. ▲ 충주비료공장 준공 민주당 정권시절 유일한 국가산업시설로 준공식을 가진 충주비료공장. 장면 국무총리 등 정부의 주요인사와 차관을 제공한 유솜 미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앞줄 왼쪽에서 첫번째가 장면 국무총리. / 1960년 9월
미국 원조로 건설된 충주 비료 공장은 건설 당시 충주와 나주 2곳이 경합했는데 여러 가지 조건면에서 충주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지만 전남 지역과 나주 지역 정치인들의 물밑 유치 운동이 전개되면서 혼선이 야기됐다. 1954년 3월 충청일보 보도 내용을 보면 당시 한국 경제인협회장을 맡았던 국회의원 이도영씨와 청원 출신 국회의원 곽의영씨, 자유당의 실세 국회의원인 최순주씨 3명이 상공부 장관을 방문 그 간의 진행과정을 보고 받고 당초의 충주 건설을 재확인 받으면서 충주 건설이 실현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료 공장 충주 유치는 충북선 철도가 제천, 봉양 까지 연장돼 중앙선과 연결되는 산업 철도 확장에도 이바지했고 충주 지역 경제 발전과 고용증진에도 기여하며 낙후된 충북 경제를 살리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 한국 유일의 기업체 충주비료공장 1960년대 미국의 자원을 받아 충주시 목행동에 건설된 충주비료공장은 식량 증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화학 비료가 없던 시절 풀 위에 인분을 얹어 발효시킨 퇴비로 농작물을 경작하던 농민들은 충주 비료 공장의 등장과 함께 넉넉한 비료의 공급으로 그동안의 경작량과는 비교가 안되는 생산 효과를 보면서 굶주림에서 벗어 나지 못하던 우리 국민들에게 점차 배고픔을 잊게 해줬다. 그리고 불과 몇해 전만 해도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였지만 정부, 농민들이 힘을 합쳐 식량 자급의 꿈을 위해 노력한 결과, 과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냈다. ▲ 각 급 기관단체장 관람 국내 유일의 기간 산업체인 충주비료공장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시찰단을 안내하느라 항상 바쁜 나날을 보냈다.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에 걸쳐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충주 비료 공장은 70년대 말에 완공된 나주 비료 공장과 울산 비료 공장의 등장으로 문을 닫게 됐고 85년 3월 새한 미디어에 매각되어 상징되는 건물 1채만 남긴채 모두 철거되면서 거의 잊혀졌다. 그러나 그 기반 위에서 우리 산업과 농업이 성장했고 우리 충북도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는 사실은 꼭 기억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김운기 전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으로 취재,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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