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하이닉스 정보만 빼낸뒤 미 정부에 제소
“산업 스파이 초청해 활보하게 해놓은 꼴”

하이닉스 극도의 배신감 표출

“저속하게 표현하자면 ‘옷 다 벗어주고도 뺨맞은 꼴’ 입니다.”
하이닉스 반도체 청주공장 관계자는 한때 매각협상 파트너였던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가 하이닉스를 미국 정부에 보조금 부당수혜 혐의로 제소한 사건과 관련,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못해 안달이 난 듯 구애를 했던 마이크론이 매각협상 결렬이후 이렇듯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수 있느냐”며 극도의 배신감을 드러냈다. 더구나 매각협상이 한창이던 지난해말과 올 연초에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시도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음모론을 주장해 온 하이닉스측은 “마이크론의 불순한 의도를 이미 간파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불길한 예측이 맞아 떨어지니 말문이 막힌다”며 정부의 졸속 매각방침이 초래하고 있는 끝모를 부작용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마이크론의 치졸한 태도

마이크론은 미국 현지 시각으로 지난 1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불허하는 보조금 협정을 한국정부가 어기고 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D램 반도체 생산업체에게 보조금을 지원했다”며 한국산 D램에 대해 상계(相計)관세를 부과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마이크론이 제출한 소장은 거의 대부분 하이닉스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을 문제삼음으로써 하이닉스에 타격의 조준을 맞추고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마이크론이 요구한 상계관세란 수출국이 특정 산업분야에 대해 정부 보조금을 지급했을 경우, 수입국이 해당 품목에 대해 보조금과 같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해 자국산업을 보호하는 조치.
어쨌든 이번에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정조준해 한국의 반도체업체를 제소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한국정부의 보조금 지원의혹 부분과 관련해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방대한 경영정보를 손아귀에 틀어쥐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만은 틀림없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실사명분 빼내간 정보 엄청나

이와관련 하이닉스 청주사업장은 “매각협상 채권단과 마이크론측이 매각 MOU(양해각서) 체결 이후 장장 5개월에 걸친 실사를 하며 공장과 서류를 샅샅이 훑는 과정에서 고급정보를 거의 다 빼내갔을 것”이라며 “결국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경쟁업체의 산업스파이를 안방으로 ‘초청’해 마음대로 활보하게 한 꼴”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측은 마이크론이 빼내간 정보의 질과 양은 자신조차 정확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이닉스측은 “이번에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제소하며 제시한 근거자료라는 것도 지난번 실사과정에서 빼내간 정보를 활용했을 게 분명하다”라고 못박았다.
“지난 4월30일 이사회에서 매각 MOU를 부결시킨 주요원인의 하나도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우려때문이었습니다. 본계약 협상에 들어가면 정밀실사가 또다시 이뤄질 수 밖에 없는데 그때엔 원가정보와 같은 결정적인 기업 기밀이 고스란히 마이크론측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해각서(MOU)가 본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강제조항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이크론측으로선 필요한 정보만 입수한 후 조건불일치 등의 이유를 들어 협상을 결렬시킬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당시 매각 MOU를 부결시킨 회사 이사회의 결정은 지금와서 생각할 때 정말 그렇게 지혜로운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이크론은 인수-매각 협상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주력 생산제품 등에서 첨예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하이닉스를 흔들기 위해 지역출신 상하원의원들을 동원, 미정부를 상대로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도록 집중로비를 하는 등 물불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게 하이닉스의 주장이다. 하이닉스는 “결국 정부와 채권단이 인수능력이나 의사가 확실하지 않은 마이크론에 서둘러 하이닉스를 매각하려고 서두르다가 정보만 내주고 그뒤 이 자료가 피소 근거자료로 활용되는 기막힌 ‘부메랑’을 초래했다”며 상당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지난해 1월이후 지금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본지, 마이크론 ‘음모’ 이미 경고
올 5월4일자 기사에 상세히 다뤄

충청리뷰는 최근에 이뤄진 마이크론측의 한국반도체 업체에 대한 제소사건 훨씬 이전인 올 5월에 이미 마이크론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간파한 기사를 보도했다. 본보 5월4일자 ??면의 상자기사는 매각MOU가 이사회마저 통과될 경우를 상정해 하이닉스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을 자세히 다뤘다.
이 기사는 “MOU가 통과되면 마이크론이 주도하는 하이닉스에 대한 정밀실사 절차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외매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대우자동차와 현대투신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기사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당시 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음모론이 무성했다. 실사과정에서 우발적 채무가 발생하면 모두 하이닉스의 책임으로 한다는 MOU내용을 놓고, 마이크론측이 실사과정에서 돌발할 우발적 채무등 이런 저런 이유와 트집을 잡아 매매계약 체결을 무산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로써 하이닉스를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하이닉스를 고사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이닉스의 두발과 두손을 꽁꽁 묶은 채 진을 다 빼고 난 뒤 나중에 투자가치가 없다며 발을 뺄 경우 하이닉스로선 시간만 허비한 채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실사과정에서 원가정보를 비롯해 고객정보 기술정보 등 민감한 기업비밀이 저절로 마이크론측에 넘어갈 우려가 높다는 지적도 다뤘다.
이번에 발생한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제소사건은 당시 하이닉스 내부에서 제기됐던 음모론이 얼마나 정확히 마이크론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를 무서울 정도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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