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만이 최고의 ‘복수’이자 ‘명예회복’의 지름길 … 사주들 ‘복수는 우리 것’

진보적인 언론학자들은 현정권으로부터 정치보복(세무조사)을 당했다고 믿는 조중동의 경영진들이 “정권 교체만이 최고의 ‘복수’이자 명예회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정치세력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했다고 진단한다.

10월29일 아침 한나라당 고위당직자들은 <동아일보>를 펴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아>가 1면 톱기사에서 “국회가 내년 정부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예산규모를 4조원이나 늘렸다”며 “한나라당이 표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 짜기에 가세했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
다음날에도 이 신문은 예산안 증액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해 “벌써 집권당이나 된 듯이 인심을 쓰고 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라고 꾸짖었고, <중앙일보> 역시 이 같은 비판에 가세했다.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30일 당 기자실로 찾아와 “언론에서 사설까지 써가며 지적하니까 난처하다”고 하소연했고 결국 한나라당은 예산안 증액 방침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한나라당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자당 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집권야당’. 지방정부와 입법부까지 장악한 한나라당도 보수언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활발한 대선 국면에서 또 다른 보수언론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에 적극적인 ‘훈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신문방송학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는 “<조선>이 10월초에 보도한 ‘한나라당과 JP의 공조 추진’ 기사는 여론의 반발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연대를 무산시켰다. <조선>은 민주당과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의 각을 날카롭게 세우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오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해 사뭇 대조적이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조선>이 한나라당에 세세한 부분까지 코치를 하지는 않지만, <조선>의 노선과 벗어난 정책을 펼 때는 가차없이 질책을 한다. 한나라당이 <조선>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말해도 지나친 얘기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치권의 <조선>·<중앙>·<동아>(이하 조·중·동) 눈치 보기는 한나라당만의 현상이 아니다. 천용택 민주당 의원은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조·중·동 세무조사를 건의한 여권 인사를 가려내 돌로 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신문의 ‘협조’를 받지 못해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권력이 조중동 눈치 보는 시대 왔다

이를 들어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시대에서 권력이 언론의 눈치를 살피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조선>, <중앙>, <동아> 3개 신문의 논조가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이 후보가 올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조중동의 정권 창출’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조중동은 대북 문제와 사회복지 정책 등에 있어서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기득권층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중동이 ‘한 목소리’를 낼 경우 어느 정도의 여론 파급력이 있을까. 한국ABC협회는 지난 10월 조중동 3사의 2001년 발행부수를 <조선> 242만8773부, <중앙> 211만6276부, <동아> 200만8752부로 최종 인증했다. 시장 점유율로 보면, 조중동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초 72.1%(TNS 조사)에서 작년 8월 76.6%(AC닐슨 코리아 조사)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최근 자전거, 컬러TV 등의 경품공세에 힘입어 이들 신문들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늘어나고 있고, 3개 신문을 중복해서 구독하는 가구의 수도 늘고 있다고 한다.
세 신문을 합친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론의 독과점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조중동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거대 미디어’로는 공중파 방송 3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방송뉴스의 경우 SBS가 조중동과 보조를 맞추고 KBS 역시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분위기에서 MBC만이 비교적 균형 있는 보도를 하고 있어 한 목소리를 내는 조중동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봄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매체들은 20∼30대 유권자들 사이에 개혁 마인드가 확산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가게 하지는 못한 것으로 분석돼 신생 인터넷매체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시장점유율 80% ‘반복확인 효과’

이런 면에서 신문구독자 수의 전반적인 감소라는 조건 속에 조중동의 여론에 대한 영향력 은 여전히 무시할 수 다는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세 신문이 지면에서 비슷한 논조를 펼 때 독자들의 판단에게 미치는 영향을 한 일간지 편집국장은 ‘반복확인 효과’라고 정의했다.
“한 신문이 진위 판단이 힘든 민감한 기사를 다룰 때, 독자들은 이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2개 이상의 영향력 있는 신문들이 똑같은 기사를 내보내면 자신의 판단보다 이들 신문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더구나 세 신문이 한 목소리로 떠들고, 1∼2개의 군소 신문마저 동참한다면 최초의 미심쩍은 주장도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조중동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국민들은 50% 이상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지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조중동 독자들의 10∼15% 정도에 불과하다고 본다”고 추정했다.
김 교수는 조중동의 영향력이 발휘된, 가장 극적인 예로 검찰의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 수사발표를 전후한 3개 신문의 보도를 꼽았다. 조중동이 처음부터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연루된 병역비리는 없다”고 논지를 펴지 않고 “제보자 김대업은 사기 전과가 있다” “증거로 제출된 테이프가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집중적으로 흘린 것이 주효했다는 것. 조중동의 교묘한 ‘의제 이동’은 검찰로 하여금 병역면제 과정에서의 의혹 수사를 독려하기보다 김대업 주장 자체를 의심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9월말부터 <조선>이 먼저 김대업 테이프의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중앙>과 <동아>가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를 연달아 내보냈다. <동아>와 <조선>은 조작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아예 “검찰이 병역비리가 사실 무근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김대업은 사법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대신 수사 결과를 앞질러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한 일간지의 검찰 출입기자는 “조중동은 ‘우리는 검찰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받아썼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병역수사를 서둘러 덮으려는 검찰이 조중동을 통해 여론을 떠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의 ‘사전 정지작업’이 끝나자 검찰 역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고 검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검찰 수사발표 이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아들 병역 문제’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된 데에는 조중동의 여론 무마 작업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얘기다.

세무조사 이후 ‘복수는 우리 것’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따로 또 같이’의 엇박자를 내던 이들 신문들이 ‘이심전심 공조’에 나서게 된 것은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거치면서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99년 <중앙>의 홍석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2001년 모든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조선>, <동아>의 사주가 구속되고 이들이 모두 1심 재판에서 탈세와 관련, 유죄판결을 받기까지에 이르렀다.
현정권으로부터 정치보복(세무조사)을 당했다고 믿는 조중동의 경영진들이 “정권 교체만이 최고의 ‘복수’이자 명예회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정치세력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했다는 것이 진보적인 언론학자들의 분석이다. “언론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자신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이회창 후보를 젖혀두고 “언론사 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겠다”는 ‘위험한 발언’을 남발하는 노무현 후보나 언론관이 불분명한 정몽준 의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서중 교수는 “한나라당과 이념적 성향이 가까웠던 조중동이 세무조사를 계기로 한나라당과 더욱 밀착했다고 봐야 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탈세 등의 치부가 드러나면 내부로부터 개혁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조중동의 내부 응집력이 너무 강해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고 분석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유착을 ‘세무조사 이후 조중동의 생존전략’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동민 교수는 “90년대 들어 정치권력의 힘이 약해진 공백을 보수언론이 차지했고, 92년 <조선>은 자신이 집중 지원한 YS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힘을 과시했다. 97년 <중앙>이 <조선>과 ‘권력의 파이’를 나눠보겠다고 한나라당을 노골적으로 지원했다가 낭패를 봤고, 97년의 실패를 딛고 올해는 3개 신문이 모두 밥그릇 챙기기에 나섰다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회창 후보는 현 정권에 맞서 조중동의 대리전을 하는 것이고,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실제로는 <중앙>, <동아>가 일정한 지분을 가진 채 <조선>이 정권을 접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다소 앞서가는 얘기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조중동이 권력 창출에 성공한 이후에도 지금처럼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남을 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보수언론이라는 이념적 동질성을 뒤로 하고 조중동은 한정된 신문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이 ‘현 기조의 유지’와 ‘차별화의 가속화’로 나뉘고, 12월 대선결과가 조중동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서중 교수는 “노무현이 이회창에게 득표율에서 10%이상의 완패를 당하면 조중동은 변하지 않는다. DJ의 퇴장이후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간주돼 DJ가 만들어낸 민주당내 보수세력들이 개혁세력이 퇴장한 공백을 메울 가능성이 높다. 3김의 퇴장 이후에도 3김이 이뤄낸 보수세력 중심의 정치질서가 공고해지고, 조중동 역시 개혁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선결과가 조중동 진로 시금석

반대로,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거나 이회창 후보와 접전 끝에 아깝게 패할 경우 이는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 의식의 표출로 해석돼 적어도 <중앙>, <동아>에게는 새로운 고민을 안겨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중앙일간지의 정치부장은 “<조선>은 수구보수세력의 정서를 담고 있기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 <동아>는 ‘3김 퇴장 후 더 이상 이념대립과 지역갈등 조장이 발붙일 수 없다’고 판단, 각각 온건보수세력과 자유주의적 보수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보수’로 자리 매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언론운동 종사자들 사이에는 한국사회의 제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들이 유독 언론 문제에 있어서는 소극적이라는 질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연대’라는 시민단체들의 연대기구가 출범했지만, “언론, 특히 조중동을 바꾸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대세론이나 지역주의에 휘둘리는 국민의식을 바꾸기 힘들고, 국민의식의 변화 없이는 올바른 선거 문화의 정착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언론단체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조선>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은 92년과 97년의 정권교체기에 여당 후보를 지원해 성공과 실패를 한차례씩 경험했다. 언론권력은 어느 순간 ‘조중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됐고, 지난 해 세무조사라는 호된 시련을 겪은 조중동은 이번 대선에서 더욱 강고한 권력의지로 무장해 야당 후보를 내세워 97년 패배의 설욕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식자들이 조중동의 보도 방향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중동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까지 만들어낸다면 향후 이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조화를 이루는 ‘열린 광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라는 암울한 예상도 나오고 있다. 소장 언론학자들과 언론단체들이 “언론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바로 조중동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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