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들은 한결 부담을 덜었다. 이회창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추격하며 쫓아오던 두 명의 후보들을 10%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멀찌감치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DJ 때리기’와 ‘DJ 양자론’의 시너지효과 덕이다.
상대방 후보가 오를만할 때를 기다려 ‘DJ 때리기’와 ‘DJ 양자론’을 버무려 공격하면 쫓아오던 후보를 여지없이 지지율 하락의 늪으로 빠트리겠다는 작전이 연거푸 성공을 거두었음은 한나라당도 부인하지 않는다. 후보단일화가 되더라도 결국 이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줄초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수세 국면이라도 DJ와 각을 세우면 대선 레이스에선 일단 ‘무승부’로 갈 수 있다”는 당내 전략가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셈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DJ 양자론’은 진화를 거듭해 체계적 각론까지 갖춘 이론으로 탈바꿈했다. 일종의 함수관계를 따지면 ‘공식’도 도출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효과는 후보군들의 지지율 추이를 통해 눈으로도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지켜볼 대목은 ‘DJ 때리기’ 효과가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즉 한나라당이 DJ를 때리면 ‘DJ=부패정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다시 한나라당이 ‘DJ 양자’를 입양시켜 ‘양자=부패정권’ 등식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처럼 얽힌 ‘DJ 양자론’의 생성과정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 과정에 이른바 ‘한나라당 따옴표 신문’이라 불리는 조·중·동이 개입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난 5월께 김대중 대통령 세 아들 비리문제가 정가 이슈로 등장했을 무렵. 한나라당은 하루도 쉬지 않고 ‘DJ 구타’에 나선다. ‘DJ=부패정권’이라는 등식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50% 대에 육박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에 발목을 잡으려는 전략이었다. 지난 5월 3일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는 당3역 회의를 통해 “이(3대 게이트) 때 조성된 비자금이 드러난 것 중 지금까지 용처를 밝히지 않은 비자금만도 6000억에 이른다”며 DJ의 비자금 조성규모를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발언한 바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현정권의 엄청난 정치자금의 출발점이 각종 벤처게이트였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가 O, X를 쳐가면서 한도 원도 없이 돈을 지난 선거 때 뿌릴 수 있었다고 한 자금의 출처가 바로 이 자금이 아닌지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노무현 후보에게 ‘DJ 양자’라는 표적을 덧붙였다.
그러자 이튿날 조중동은 일제히 포문을 열어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를 그대로 보도했다. 방식도 동일하다. 의혹을 진실로 혼동케 하는 ‘직접 인용방식’을 동원했다. <조선일보>는 4일 8면 정치면에 “6000억대 비자금 어디 갔나”라며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았고, <동아일보>도 덩달아 4면 정치면에 “비자금 6000억 어디 썼나”를 제목으로 뽑아냈다.
물론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연일 계속된 조중동의 ‘따옴표 보도’는 결국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급락을 가져왔고 한달 전에 비해 무려 10% 가까운 지지자를 노 후보측에서 이탈시켰다. 이후 계속된 한나라당의 ‘DJ 양자론’을 조중동은 여과없이 받아쓰기 시작했고, 결국 7월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20%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반대로, 비교적 최근 불거진 현대상선 대북 송금설은 정몽준 의원을 잡기 위한 ‘DJ 때리기’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9월 25일 국정감사장에서 ‘현대상선의 4000억 대북 송금설’을 제기하자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빠른 하락세를 보이며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물론 한나라당은 대북 송금의 배후로 청와대를 몰아붙이며 본격적인 DJ 때리기에 열을 올린 이후의 경향이다. 이날 정영호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정몽준 의원이 ‘DJ 둘째 양자’란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DJ 양자론을 정 의원에게 덮어씌웠다.
엄호성 의원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제기된 이튿날인 9월 26일 보도를 보면, 조중동은 일제히 엄 의원의 발언을 따옴표로 직접 인용한 제목을 달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당일 기사에서 ‘북에 4억불 전달의혹…남북정상회담 때’라고 제목을 뽑았으며, <동아일보>는 26일 1면에 ‘2000년 6월 남북회담 때 4900억 전달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만을 주요 팩트로 다루었다. <중앙일보> 또한 보도 태도에 있어 조선, 동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은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30%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여론조사의 경우 9월 22일 30.8%이던 지지율이 9월 25일 이후 30% 아래로 내려왔으며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도 이날을 분기점으로 10월초 26.8%까지 곤두박질쳤다. 반면, ‘DJ 양자론’의 무풍지대에 있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10월 31일 현대상선 대북지원설과 관련한 신문보도 모니터링 결과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의혹 논란에 대한 조선, 중앙, 동아의 보도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면도 돋보였지만, 한쪽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가정과 사실을 혼동하게 함으로써 투명한 정보의 전달을 막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항은 ‘DJ 때리기’와 ‘DJ 양자론’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두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 이회창 후보는 답보상태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김상현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반한·비한 세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즉 반DJ가 35∼40%라면 반창은 60% 가량 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결국 ‘포스트(post) 3김 정치’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국면에서도 DJ의 망령은 좀체 사라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번 2002 대통령선거가 DJ와 반DJ간의 경합이 될지 후보간 대결구도로 이어질지, 한나라당의 ‘DJ 양자론’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또 후보단일화가 된 이후에 ‘약발’이 먹힐지도 주목 대상이다. ◑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