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의 가슴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다. 그 시인이 죽었을 때 인류의 마지막 사람이 죽는 것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시인은 마음이 가난해서 네루다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에 유배되기도 하고, 박노해처럼 감옥에서 맨 나중에 나오기도 하며, 윤동주처럼 참혹한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막돼먹은 세월이라 하더라도 시인의 가슴 속에 있는 시인을 가두거나 죽이지는 못한다. 그것은 천명(天命)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우암산 정상에서 안덕벌 쪽으로 향한 이정표를 따라 내려가다가 8부 능선 쯤에 이르면, 아직도 그때의 참상이 실감나게 펼쳐져 있다. 수십년된 굴참나무·소나무·아카시아 나무들이 전장의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가지가 찢기고 허리가 잘리고 뿌리째 뽑힌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면서 태풍 루사의 위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길로 곧장 내려오다 보면 두 개의 옹달샘이 나온다. 마치 병이 깊은 아버지를 구한 바리데기의 생명수(生命水)같은 옹달샘이다. 그 샘과 샘 사이에는 비스듬한 풀밭이다. 고요가 높이높이 쌓여 있다. 산여뀌·달개비·쑥부쟁이·구절초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이 평화로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한다.
그 날 밤이었을 것이다. 쭉쭉 뻗은 나무들은 완강히 버티었을 것이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대고 검은 비를 뿌려댔을 것이다. 견디다견디다 나무들은 쓰러졌을 것이다.

풀이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東風)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작은 풀들은 서로 몸을 부비며 떨면서 울었을 것이다. 소주 한잔씩 마시며 혁명가를 신음처럼 불렀을지도 모른다. 술김에 혁명가를 불렀지만 힘이 없는 그들이 종내 할 수밖에 없는 일은 울거나 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 밤이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매운 바람 앞에 붙잡혀 간, ‘신문 같지도 않은 신문’에 광고를 낸 민초들은 얼마나 떨었을까. 시청·도청 공무원들, 고유명사가 생략된 민초들은 온몸으로 떨다가 온몸으로 눕다가 온몸으로 울었을 것이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이건 무슨 말인가. 그 약하디 약한 풀들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일어나고, 운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늘 권력에 짓눌리다 보니 눈치가 빠끔해졌다는 뜻인가.
아니다. 탄력성(彈力性)의 획득이다. 폭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의 획득인 셈이다. 어리고 약하고 순진한 풀들의 최대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진 세월 뒤에 평온을 되찾은 민초들은 그 탄력성으로 말미암아 그저 그렇게 자기자리에서 자식을 기르며 산다. 그래서 그들은 온몸으로 울고 웃고 눕고 일어서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뿌리까지 눕는다는 것은 풀의 완벽한 패배다. 완벽한 패배의 표면적 대립구조는 앞의 연에서 획득한 탄력성으로 인하여 완벽한 승리를 뜻한다. 이런 구조를 역설적 구조라 칭한다. 그러기에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이 네 행은 무당의 신탁(神託)과도 같은 리듬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민중이 역사의 합법칙성이며, 그 역사는 영원하다는 정언명령(定言命令)인 셈이다.
우암산의 비스듬한 풀밭이 왜 평화로운지 알 것 같다. 그 작은 풀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시인이 살고 있었다. 그 작은 풀잎들은 온몸을 뉘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눕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그러기에 태풍은 가버렸지만 그들은 거기서 고즈넉한 평화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청주의 한 시인이 감옥에 갇혔다. 가을은 이대로 그냥 갈 모양이다. 시인을 감옥으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시인의 가슴 속에 살고 있는 시인을 가두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98년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바뀌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눈물은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눈물 아직 식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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