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2월 20일 오전, 마감시간을 앞두고 북새통이던 동아일보 광고국에 오랜 광고주였던 H약품의 홍보담당 직원이 갑자기 찾아 와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며 석간신문에 들어갈 광고동판을 회수해 돌아갔습니다.
뒤 이어 D생명 직원이 연말까지 계약된 광고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돌아갔고 나흘 뒤인 24일에는 L그룹등 7개 광고주가 일시에 계약을 철회했으며 같은 빌딩에 있던 동아방송에도 13개 광고주가 잇달아 철회를 통보해왔습니다.
이에 앞선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동아일보 와 동아방송기자들은 그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면서 지면과 전파는 아연 생기를 띄기 시작해 긴급조치 아래 꿈틀거리던 민주회복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에 불안해진 유신 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12월 16일부터 동아일보 동아방송 신동아 여성동아 등에 광고를 내지 못하도록 무차별적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유신치하 ‘동아광고사태’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광고탄압이 시작 된지 한 달만에 신문은 상품광고의 95%, 방송은 전체광고의 92%, 월간 신동아는 90%의 광고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취소된 광고 면은 빈 지면이 되어 백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 탄압도 언론 자유에 대한 기자들의 열의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광고 탄압이 본격화되자 기자들은 편집국 간부들과 긴급총회를 열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더욱 확고히 다져 어떠한 외부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처한다고 결의했습니다.
유신정권에 의한 희대의 광고탄압사건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 국내의 재야 종교 사회단체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한편 ‘탄압 받는 동아일보 돕기’를 전 국민에 호소, ‘격려광고’란 이름으로 지면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빛은 어두울수록 더욱 빛난다’며 끼고있던 금반지를 빼 놓으며 목 메이던 소녀도 있었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금일봉을 던진 병상의 가난한 시인, ‘배운 대로 실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렇게 광고하나이다’라고 토로한 법대 졸업생도 있었습니다. 또 ‘나는 저주한다. 비겁한 탄압자, 굴복한 광고주’라고 울분을 토한 상인, ‘동아와 함께 신혼을 자축한다’는 신혼부부, 아무 말 없이 백지광고만 낸 해외의 독자, ‘근로자의 벗 동아여’라고 외친 품팔이 노동자, 동창들끼리, 클럽끼리 격려광고대열에 나섰으며 교회와 성당에서도 성금을 모았고 산사에서 참선하던 스님들도 달려 나왔습니다.
1969년 3선 개헌에 이어 유신체제를 구축한 박정희정권은 언론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에 일선기자들을 중심으로 언론자유수호 운동이 전개되자 박정권은 이 운동에 대해 강력히 대응했는데 특히 동아일보 광고탄압은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신문은 날마다 백지광고와 격려광고의 봇물을 이루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국민들의 성원은 더해만 갔습니다.
동아광고탄압은 74년 12월 16일부터 75년 7월 16일까지 7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정권과 언론의 대립은 결국 언론사주들의 ‘투항’끝에 113명에 달하는 기자들의 대량해고로 매듭지어졌습니다. 이때 해직된 기자들은 온갖 어려움 끝에 당시 편집국장이던 송건호선생을 필두로 1988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국민주 신문을 창간하니 이것이 오늘의 ‘한겨레’신문입니다.
그로부터 28년, 시공을 뛰어 넘어 충청리뷰가 똑같은 백지광고에 격려광고를 싣는 상황을 보면서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던 투키디데스의 명언을 절감하게 됩니다. 물론 동아의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사건일지 몰라도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기자들이 힘겨운 투쟁에 나섰다는 점에서는 그때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철야농성 15일째, 50여평 리뷰 사무실은 밤이면 냉기가 감돕니다. 도민들의 성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엊그제는 서울에서 정치평론가인 ‘21세기 한국연구소‘ 김광식소장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내려와 농성중인 기자들을 격려하고 돌아갔습니다. 김소장는 “이번 충청리뷰 사건은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상징성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계속되는 철야농성에 기자들의 얼굴은 피로의 빛이 역력하지만 언론자유수호를 외치는 의연한 결의만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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