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가는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미명의 새벽 3시40분 청주체육관을 출발한 버스가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한 것은 5시30분. 부두 해장국집에서 아침요기를 하고 대기중인 쾌속선 마린브리지호에 올라 백령도로 향한 것은 날이 밝은 7시10분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주선에 따른 도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시·군협의회장과 임원, 전국국공립대학 총장일행 40명의 백령도 안보시찰에 동행하는 길이었습니다.

풍랑으로 며칠 째 발이 묶였던 마린브리지호는 정원 322명의 제법 큰 쾌속선이었지만 서서 가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배 안은 승객들로 가득 했습니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의 직선 거리는 191㎞. 시속 50노트로 항해 할 경우 4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마린브리지호는 출항한 뒤 얼마 못 가 이내 파도와 싸우는 힘든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바람이 일어 파도를 안고 가야 했던 것입니다.

선체는 크게 흔들렸고 승객들은 이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배 멀미로 얼굴 색이 변하고 여기 저기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기진맥진한 채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 용기포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12시 40분.

청주를 출발한 지 9시간, 인천항을 떠난 지 5시간30분만이었습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쾌속선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백령도에 가려면 10시간이나 배를 타야했다고 합니다.

백령도는 북위37도52분에 위치한 국내 8번째 섬으로 행정구역은 인천직할시 옹진군 백령면입니다. 서해 최북단에 있으며 북한과 가장 가까이 인접해 있는 넓이 446㎢, 서울 여의도 면적의 5배에 이르는 천연자원이 많은 섬입니다. 인구 1만 명 가운데 주민이 반, 군인이 반이니 섬 전체가 요새(要塞)나 다름없습니다.

백령도는 수많은 명소와 오염되지 않은 청정환경의 특산물이 널려 있는 자연의 보고(寶庫)입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워 조선조 때 누군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읊었다는 두무진(頭武津)의 기암괴석들,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 세계에 단 두 곳밖에 없다는 사곶해안의 천연비행장, 형형색색의 콩알 같은 돌들이 쌓여있는 콩돌해안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관광자원입니다.

또 국내에서 이곳에만 서식하는 물범과 40m 물밑까지 내려가 먹이를 잡아 온 다는 가마우지, 수천 수만의 갈매기 떼 등등…모든 곳이 명승이요, 천연기념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령도가 유명한 것은 영토의 최북단이라는 점과 바다건너편에 바로 북한 땅이 있다는 점입니다.

직선거리 11㎞로 손에 잡힐 듯 코앞에 보이는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과 몽금포는 크게 부르면 북녘주민의 대답이 돌아 올 것만 같은 지척의 거리입니다.

두무진 언덕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자니 문득 ‘몽금포 타령’이 떠올랐습니다. “장산곶(長山串) 마루에 / 북소리 나더니 / 금일(今日)도 상봉(上峰)에 / 임 만나 보겠네. / 에헤 요 어 헤요 / 임 만나 보겠네.” 중모리장단의 가락이 귓가를 맴돌며 찡하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우리 일행을 맞은 해병흑룡부대는 부대장이 직접 북측의 동향과 우리측의 대비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1급 군사비밀이 분명한 지하벙커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과거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극비보안사항까지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군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고 일행 또한 군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백령도는 평화로웠습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검은 파도는 밤낮없이 흰 거품을 몰고 와 방파제에 쏟아내고 무심한 갈매기들은 그림처럼 바다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우리군이 훈련 삼아 쏘는 포성이 신경을 자극하긴 했지만 이곳이 북한과 가장 가까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라는 긴장감은 고지 관측소를 둘러 볼 때 말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주민들의 표정 또한 그랬습니다.

내일이 기약되지 않은 평화일망정 긴장 속에서나마 백령도에는 평화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999년 연평도해전, 2002년의 서해교전이 모두 이곳 근해에서 일어났고 아직도 그 악몽이  선명하기에 말입니다.

남북관계가 더욱 발전해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은 이곳 백령도에서도 똑같이 느껴야 했습니다.

언제든 통일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 눈앞의 검푸른 바다에 유람선이 뜨고 남북어민이 함께 배를 타고 흥타령을 부르며 물고기를 잡는 정겨운 모습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백령도 총각이 장산곶으로 장가가고, 몽금포 처녀가 백령도로 시집오는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먼 앞날의 꿈이 아님을 나는 백령도에서 그려보았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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