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표 정치부 차장

   
금강산의 너른 산자락은 강원도(북측) 금강군, 고성군 통천군에 펼쳐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의 영토가 분명하지만 관광을 직접 다녀온 사람이라면 금강산 일원이 현대 아산의 특구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적어도 연두색 철망이 경계를 이룬 관광지역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단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곳곳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북측의 병사들과 시선이 마주칠 때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혹자는 설악산과 금강산의 가장 큰 차이점이 “초소에서 남측 관광객들을 지켜보는 북측 병사들이 아니겠냐”는 궤변 아닌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충청리뷰 금강산 마라톤 행사’를 위해 찾은 2006년 3월 금강산의 분단 체감온도는 분명 삼동(三冬)을 지나 봄날이었다. 춘곤증이 밀려오는 만춘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새싹과 꽃망울이 움트기를 속셈하는 새봄의 기운은 완연했다.

봄기운은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같으면 총을 든 북측 병사들이 버스에 올라 한차례 위력시위를 하는 통과의례를 숨죽이며 거쳐야했지만 올해는 이 절차가 사라진 것이다.

일단은 배를 이용해 관광이 이뤄지던 시절 장전항 인근에 마련했던 출입사무소가 금강산으로 가는 북녘 초입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고 일일이 짐을 뒤지며 이것저것 캐묻던 출입절차도 확연하게 간소화 됐다.

“충청리뷰가 뭡네까?” 간혹 던지는 질문도 통과를 위한 관문이라기 보다 갈라져사는 동포들에 대한 관심표명으로 받아들여졌다.

금강산 마라톤 명예대회장으로 참가한 오제세 의원이 출입심사대를 통과할 때 정복을 입은 북측 심사요원이 “시간이 있으시네요”라며 옅은 미소를 건넨 것은 과히 충격에 가까운 변화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긴장감이 줄어드니까 북한에 온 생생한 느낌이 반감된다”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분단상황이 상품이 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중간 결론’ 수준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명제이다.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며 냉전시대를 살아왔던 세대일수록 분단상황을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앞으로는 화해와 통일의 무드가 새롭게 써 나갈 민족사의 흐름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강산 행사 내내 철망으로 된 담장이 걷히고 북측 동포들과 가슴으로 만나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현대 아산이 조성한 ‘준특구’ 안에 마치 파견된 것처럼 들어와 있는 북측의 접대원들이 아니라 철망 밖 민가에 사는 진짜 북녘 동포들과 가슴을 열고 만나는 날을 꿈꿔보았던 것이다.

감상적이고 막연한 통일염원이 이 수준인데, 남북으로 갈라져 반세기를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한은 얼마나 크고도 무거운 천형과도 같은 것일까?

그래서 하교길에 철망 사이로 난 건널목을 건너면서 우리가 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던 까까머리 초등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몰래 슬쩍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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