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5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낯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올 봄 ‘노풍’(노무현 바람)에 잠시 흔들린 것을 제외하고는 내내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97년 대선 패배의 불씨를 당긴 ‘병풍’도 이번에는 이 후보의 30% ‘벽돌 지지층’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이다. 대선레이스에서 5년 동안 1위로 달려온 마라토너 이회창 후보가 이제 50여일 후 D-데이를 앞두고 1위 굳히기에 돌입했다.
예상투표자 2780만명 중 54.6%인 1520만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설정한 2002년 대통령 선거 목표다.

김영일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민주적인 직선제로 자리잡은 5대 대통령 선거 이래 50% 이상 득표가 나온 것은 7대 박정희 후보가 얻은 51%가 유일한 기록”이라며 51% 이상의 압승을 장담했다. 김 본부장은 또 “‘거짓말 정권’을 대체할 ‘믿을 수 있는 대통령’ 이회창 후보와 자질·능력이 부족해 나라를 맡기기에는 불안한 노무현·정몽준 후보를 차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대세론이 들불처럼 퍼질 것”

특히 선대위 홍보위원회가 10월 초 이회창 후보에게 직접 보고한 A4 3페이지 분량의 ‘홍보전략 보고서’는 “현재보다 21%의 지지도를 높이는 ‘플러스 21% 플랜’을 마련해 30∼40%에 달하는 부동층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한나라당이 공략해야 할 부동층은 30대 중반의 충청권 출신 수도권 거주자로 2명의 자녀를 둔 20∼30평형 전셋집 거주자”라며 구체적인 주요 ‘타깃’까지 명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이회창 대세론’ 확산을 위한 3단계 전략이 담겨 있다. 우선 1단계로 10월 26일까지는 ‘믿을 수 있는 대통령’ 이미지를 정립하고, 2단계로 11월 26일까지 심정적 ‘이회창 대세론’을 점화시킬 계획이다. 선거운동 기간인 3단계에서는 TV광고 등을 통해 대세론을 정착시키는 등 총력전을 전개할 방침이다.
선대위는 또 10월 23일까지 모두 끝난 16개 시·도선대위 발대식에 이어 29일 올림픽공원에서 ‘한나라당 후원회 및 대선필승결의대회’를 개최한다. 당원과 후원인 등 7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중앙당 후원회는 야당 5년만에 중앙당사가 아닌 당사 밖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다. 선대위는 “이 행사를 기점으로 부패정권의 교체와 ‘이회창 대세론’이 들불처럼 퍼질 것”이라며 “‘이회창 대세론’을 전국 방방곡곡에 전파하여 과반수 이상 득표목표를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 불리기로 대세론 확산

한승수·이완구·전용학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은 강원·충청 지역에서 정몽준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회창 후보에게 큰 힘이 됐다. 이완구 의원이 물꼬를 튼 자민련의 경우 이미 전국구 의원들을 제외한 8명의 지역구 의원 중 5∼6명이 탈당 시기를 고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나라당으로 키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근혜 미래연합 대표도 “한나라당 복당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다”며 그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이회창 후보는 대구·경북 지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게 됐다. 특히 민주당도 충청·경기 남부 지역 반노·비노 의원들의 동요가 심각한 가운데 민주당에서만 2∼3명의 한나라당 입당설도 나오고 있다.
이로써 “뜻이 같으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추가 영입을 통한 전방위 ‘세 불리기’에 나선 이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으로 대세론을 확산시킬 수 있게 됐다. 또 이 후보의 세 불리기는 단순히 충청권 등의 지지세 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창연대를 저지하기 위한 대대적인 ‘역(逆)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민주당과 자민련의 반발, ‘총선 민의 왜곡’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의원들의 영입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같이 정면돌파로 입장을 선회한 데에는 ‘거품’이라고 생각했던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국민통합 21’의 창당 움직임이 크게 작용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을 굳힌다는 전략 아래 이인제 민주당 의원과 16대 공천에서 탈락한 조순·이기택, 김윤환 전 의원 등 ‘구원(舊怨)세력’ 껴안기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나라당은 사문화된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을 부활키로 했다. 이 법이 부활되면 전직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이 의장으로 선출된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반(反) 한나라당, 반(反) 이회창 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는 판단이다. 집권하면 정부 요직 중 30%를 호남 출신에게 배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 정책위가 마련한 한 대선 보고서는 이 후보에게 한때 동지였다가 등진 세력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국민통합 의지를 천명할 것을 권고했다. 이른바 ‘큰바다 정책’이다. 이 보고서에는 ‘여성총리 임명’ 을 공약화해 올해 탈당한 박근혜 대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후보는 최근 TV 토론회에서 박 대표에 대해 “일관된 철학과 소신이 있다”며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한나라당은 박태준·이수성 전 총리 등 광범위한 구여권 인사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박 전 총리가 일본으로 출국하던 지난 10월 20일, 권철현 비서실장을 공항으로 보내 환송 인사를 했고, 얼마 전 박 전 총리가 귀국했을 때 이상득 최고위원이 직접 찾아가 인사를 하는 등 공을 들였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큰바다 정책’은 단순히 당을 떠난 인사들을 복귀시키는 차원을 넘어 보수적 범여권 인사의 총체적 규합작업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보복 않겠다는 의지 과시

‘큰바다 정책’은 영입 대상자인 모든 ‘강물’을 품에 안고 감으로써 이회창 후보라는 ‘큰바다’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큰바다 정책’은 권력자의 ‘아량’을 전제로 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영입 대상자들은 바로 이회창 후보가 오늘날의 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제거했던 인물들이다. 다시 말해 이제 확고부동한 대선 승리가능성 1위라는 지위에서 이들이 다시 들어온다고 해도 더 이상 흔들릴 여지는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셈이다.
또한 ‘큰바다 정책’이 성공하게 된다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소수로 고립시키는 것과 함께 정 의원의 ‘국민통합 21’ 출범 자체에도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이는 또 이회창식 ‘역(逆)정계개편’에 의한 대세론 확산을 공고히 하게 된다. 특히 이 후보는 ‘큰바다 정책’을 통해 대세론을 기정 사실화함으로써 고정표를 다지는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7년 대선 패배 이후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맹공으로 당을 단결시켜 왔다.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을 부추겨 반사이득을 기대한 것이다. 효과는 있었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연거푸 압승했다. 그러나 이 후보 자신에게는 ‘정쟁’의 이미지가 축적됐고, 반창 세력의 결속을 촉발하는 역효과도 뒤따랐다.
따라서 이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을 깎아 내리는 직접적인 공격을 중단하는 대신 정책적인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철저하게 ‘낮은 곳으로’를 외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정책·민생투어에 나섰다. ‘위장 서민’이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에서 상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직접 청소부 활동을 벌였다.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임대주택 방문, 대학 자취생과의 만남 등도 그런 차원이다. 대신 모든 대여 공격은 서청원 대표를 위시한 당 선대위가 도맡았다.
이 후보의 이러한 행보는 반창연대의 결속력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대선 승기를 확실히 잡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낮은 곳에서부터 ‘대세론’을 확산시킴으로써 안정화 단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는 대세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35%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지지율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정몽준 의원과 노무현 후보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여전히 지지율은 33%를 기록했다. ‘이회창 대세론’이 ‘허풍’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11월까지 지지율이 당선권인 40%선을 돌파해야 한다.

이회창 지지율 정체…역풍 우려하기도

이 후보측은 △영남 △40대 이상 △보수층으로부터 이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호남 △20·30대 △진보층에서는 반이회창 성향이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일 본부장은 “당 자체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친이회창과 반이회창이 각각 35% 정도로 파악된다”며 “30%나 되는 부동층의 10% 지지만 가지고 온다면 당선 안정권”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측은 지지율 40% 돌파구를 젊은 층과 충청권 공략에서 찾고 있다. 이 후보가 최근 젊은 층과의 접촉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0월 20일에는 당내 386세대의 총결집체인 2030위원회 선대위가 발대식을 가졌다. 4자연대(정몽준, 자민련, 민주당 반노·비노세력, 이한동)의 가능성이 희박해 지면서 충청권 공략도 한결 수월해졌다. 김용환·강창희 의원이 자민련 의원들을 대상으로 개별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김영일 본부장이 사석에서 내각제를 자주 언급함으로써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이인제 민주당 의원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와 함께 영남권에서의 이 후보 지지율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영남권에서의 이 후보 지지율은 50%선이다. 영남이 한나라당의 전통적 표밭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반DJ 정서에 의한 반사이익 정도의 소극적 지지인 셈이다. 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기 위해서는 영남지역에서의 소극적 지지를 적극적 지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또 이 후보측은 대외적으로 대세론 확산에 주력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산적해 있는 ‘지뢰밭’을 경계하고 있다. 이 후보도 최근 주요 공식 행사에 참가 할 때마다 “겸손해야 한다”며 ‘내부 방심이 최대의 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10월 23일 선거전략회의에서도 이규택 총무가 “우리가 정권 잡으면 교통위반신고 보상금제도 같은 것은 없애겠다”고 말하는 등 당내 곳곳에서 이미 대선승리를 기정 사실화한 듯한 발언이 튀어나오고 있다. 얼마 전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권해야 한다”고 발언한 한인옥씨나 서울시 선대위 후원회에 참석해 발언한 이명박 시장도 ‘지뢰밭’이다. 이 후보측은 이에 대한 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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