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쥘 힘만 있어도 쓸 겁니다”

6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 형과, 10년째 행정일지를 쓰는 아우가 있다.

유별난 ‘일기 사랑’의 주인공은 우건도(57.충북 음성부군수) 건석(78.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씨 형제.

   
▲ 6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 우건석씨(78). 누런 갱지로 된 일기장부터 최고급 다이어리까지, 그의 앞에 놓인 60여권의 일기장이 세월의 흔적을 대변한다. 오른쪽은 군정일지를 작성 중인 우건도 충북 음성부군수(57).
9남매 중 막내인 우 부군수는 충북도 기획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997년부터 9년 동안 기록한 100여권의 도정일지(道政日誌)를 도에 기증해 화제를 낳았던 인물이다.

그의 기록습관은 올해 음성부군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됐다.

도정일지에서 군정(郡政)일지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날의 일기(日氣)와 사건사고, 일간지 보도내용, 주요업무사항 등을 빼놓지 않는 성실성은 그대로다.

부임일인 지난 1월 19일부터 2월 28일까지 40일 남짓 쓴 일지의 제목은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일기’.

그는 체계적인 자료수집과 기록을 위해 이달 1일자부터는 아예 군청 일지전담부서를 지정했고, 향후 6개월에 한 번씩 군정일지를 묶어 군의 역사로 영구 보존할 계획이다.

이런 그보다 형 건석씨는 한수 위다.

무려 60년동안 일기를 써온 그는 기록과 메모의 왕으로 불리운다.

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7년 음력 1월 1일.

단기와 음력을 기준으로 써온 그의 일기는 음력 2006년 1월 1일(양력 2006년 1월 29일), 정확히 60년을 채웠다.

일수(日數)로는 무려 2만1900일.

하지만 그가 보관 중인 60여 권의 일기장 중 유일하게 빠진 부분도 있다.

학창시절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서울서 충주로 피난 올 때 다시 돌아와 챙길 요량으로 교실에 보관했던 몇 개월치 일기장이 그것이다.

그는 “단 하루라도 기록을 빠뜨리면 더 이상 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의 기억만 더듬을 수 있다면 다시 써 채워놓고 싶다”고 했다.

메모습관 탓에 하마터면 생명까지 잃을 뻔한 일도 소개했다.
 
“피난 내려올 때 충주 부근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혔는데, 주머니에서 메모지가 나오는 바람에 간첩으로 오인 받아 죽을 고비를 겪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가 인민군에게 빼앗겼던 메모지는 피난길에 밥을 얻어먹은 곳과 출발시간, 도착시간 등이 적힌 피난일지를 말한다.

보물보다 더 소중히 보관한 그의 일기장에는 피난시절 겪었던 온갖 고초와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시기의 절박했던 삶의 편린들, 가족끼리 오순도순 정붙이며 어려움을 참고 견뎌냈던 일들, 남모르게 가슴앓이 했던 수많은 아픔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기쓰기 60년을 채운 기념일인 지난 설날 아침.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 ‘나의 일기 육십년사’라는 제목의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

이날 세배를 하고 자녀들이 별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세뱃돈이 아닌 ‘일기장’.

유별난 일기사랑의 대물림(?)이 시작된 셈이다.

3년 후 정년퇴임까지 일지를 기록하고, 이후로는 개인일기를 쓰겠다는 아우와 살아있을 때까지 가족의 역사를 쓰겠다는 형.

이들의 별난 일기 사랑은 펜을 쥘만한 힘이 남아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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