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모처럼만의 여유인듯 싶다. 갑자기 주어진 나만의 시간이 오히려 내게 잠시 부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아니지 얼마만인가 싶어 난 여유속의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예닐곱살 되뵈는 녀석들의 조잘거림이 사무실 창을 넘어왔다. 긴겨울 움츠렸던 아이들, 조금은 얇아진 옷을 입고 노는 모습들이 귀엽고 천진스러웠다. 그들에게서 나는 아주 까마득한 날들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아지랑이 흔들고 오는 꽃바람은 눈사위를 희끄무레 흐려 놓았다. 흐릿한 시야 덕분에 실눈을 뜨고 바람속에서 먼 남쪽의 소식을 듣는다. 창틈을 비집고 들어 온 봄햇살이 멍한 내 모습에 흠칫 놀라 사무실 바닥으로 길게 누워 버렸다.
긴 겨울을 달려오느라 지친 탓인가! 그사이 은근슬쩍 졸음이 그림자처럼 덮쳤다.

어느새 참으로 긴 세월의강을 건넜다.

젊음이 하냥 길줄만 알았더니....

바득바득 살아 온 날들이다.
정신없이 동분서주 했던 날들이다.
뒤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 가던 날들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던가!
세월이 훑고 지나간 흔적만 내 육신에 남아있을뿐.

이제 내 품안의 어린것들도 저 바람속으로 날려 보내야 할때다. 기나긴 겨울 온 세상이 동토가 되어 꿈쩍도 못할때 나무들은 이미 제 분신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앙상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들이 슬퍼 보이던가! 아니다 슬플것도 서러워 할것도 아쉬워 할것도...
그저 묵묵하게 질서를 지켜 갈 뿐이다. 하나 얻으면 하나 버려야 하고 생성하면 소멸하고 소멸하면 생성하는 그 자연의 섭리를.

산자락 휘돌아 간 오솔길따라 훠이 훠이 걸어가는 스님의 장삼자락 바람에 휘날리듯 그렇게 살아간들 누가 뭐랄까마는...

나는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 긴 겨울의 터널속을 빠져 나갔다.

아직은 싸늘함이 피부를 스치지만 어디선가 들려 온다. 가만히 귀기울이고 있으니 봄의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갸날퍼 보이지만 맑고 투명하면서도 화사해 보이는 꽃! 너무 여려보여 마음을 애잔하게 하는 그런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봄바람에 실려왔다.
그는 봄빛이 찬란한 화양계곡의 암반위에 서있었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 하는 친구! 그의 손을 잡으려 내밀었지만 자꾸만 뒤로만 가는 친구를 향해 나는 달려 갔다.
그러다 그는 바위에서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물에 빠져 철퍼덕거리다 일어나 젖은 옷을 툭툭 털며 웃고 있었다.

투명한 물빛을 닮은 친구, 그의 웃음은 너무도 해맑았다.

어쩌면 봄비 같기도 하고 혹 여름비에 흠씬 젖은 나뭇잎 같기도 하고 가을날 곱게 물든 감잎이기도 아니 첫눈처럼 설레임으로 다가서기도 하는 그다.

두손을 꼭잡고 우린 마주 보았다.

화양계곡으로 석양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밤하늘에 터져 오르는 폭죽처럼,...

계곡의물빛은 금빛으로 물들어 출렁거리고 버들가지 가지마다 물올라 봄빛에 온 몸을 뒤틀어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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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어깨를 마구마구 흔들었다.
'에고 침이나 좀 닦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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