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져서 발 밑에 쌓이고 미리내 높은 가을입니다. 가을이 오기 전부터 가을이 무서워서 깊은 산에 가서 숨어야하겠다던 신형. 시로 살고 시로 죽으며 시로 다시 태어나겠다던 낭만주의자 신형, 오늘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참으로 생게망게합니다. 그러매 단풍 지는 깊은 가을을 밟던가 또 어디를 서성이다가 한 잔 소주에 세상을 잊어 볼까요?
신형, 사실 저는 오늘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시드럽고 시난고난한 세월을 지나서 이제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고 안심했는데 이런 일을 만나고 나면 무척이나 얄망궂으니까 말이지요. 엊그제 한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허름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시면서 <아니 지금까지 시인이 세상을 움직이지 않고 법관이 세상을 움직였단 말이가!>라고 일갈(一喝) 호통을 치실 때 나는 웃고야 말았습니다. 시인의 순수함 때문에 말이지요. 그 언젠가, 플라타너스 낙엽 쌓인 길을 밟으면서, 대장부 갈 길을 고구려 장수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 때 신형은 말했습니다. 정의의 칼은 벼르지 않아도 서슬이 퍼렇고 불의의 칼은 갈고 갈아도 늘 무디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형께서는 정의의 칼! 과 마음의 꽃인 시를 쓰는 것이라고 하신 것 기억나십니까? 그렇습니다. 진실은 진실 그 자체의 힘 때문에 갈지 않아도 갈선 칼날 같답니다.
그런데 신형. 어인 일인지 청주의 등달은 검찰은 날마다 밤마다 칼을 갈면서 사람을 베어버리려고 하고 있답니다. 대체 무엇을 베려는지 알 수 없도록 시커먼 장막을 쳐놓고서 육법전서(六法全書)라는 이상한 숫돌에 강철 무지개 빛 칼날을 세웠습니다. 무척 빛나는 칼을 들고서 종횡의 무진을 오고 갑니다. 감히 존엄한 검찰권력을 비판하는 자, 이 법의 칼로써 쳐버리리라 하는 포고문도 붙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법으로만 보고 법으로만 듣고 법으로만 말합니다. 세상에 법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법 바깥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철옹성을 쌓아두고서 법의 향연(饗宴)을 즐기는 그들은 신기루 나라의 앨리스랍니다. 신형, 잘 아시겠습니다만 법으로 진실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은 정말 순진한 사람들 아닙니까? 시가 세상을 다스리고 글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모르니까요.
이야기의 전후는 이렇습니다. 청주에는 윤석위라는 시인이 있어 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흠모해 왔습니다.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남달리 단정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분이었지요. 의지는 강해도 마음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처럼 여리고 착하답니다. 이 분은 또 충청리뷰라는 신문의 사장이기도 한데, 충청리뷰는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정신으로 만드는 주간신문이랍니다.
이 충청리뷰의 기자들이 얼마 전 검찰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답니다. 신형, 나는 지역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충북 청주가 전국에서 범죄율 1위라는 해괴한 사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당연히 기자들은 취재를 했을 것이고 검찰의 가혹한 법 집행이 원인 중의 하나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충청리뷰는 어쩌자고 이러한 사실을 기사로 쓰는 한편, 덧붙여서 검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일은 버르집어져 버렸답니다. 감히 그렇게 비판하는 언론을 청주의 검찰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장의 수사 명령이 떨어졌고 기자들이 언제 불려갈지 모를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벌어졌는데도 어쩐 일인지 다른 신문과 달리 충청리뷰는 꿋꿋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자신들의 주장을 썼을 뿐만 아니라 지루퉁하는 검찰의 언론탄압에 항거까지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신문은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한 것입니다. 더 화가 난 검찰은 이번에는 사장을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충청리뷰의 사장 윤석위 시인과 사장 개인회사의 전무였던 성실한 시민 박욱재를 긴급체포라는 등골이 오싹하는 형식으로 가두어버렸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할 일이 있었던지 광고주와 주주들 소환해서 반말까지 섞어 가면서 조사했답니다.
윤석위 사장 개인의 문제라면서 충청리뷰와 연결시킨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도 따라가기 가년스런 검찰적 상상력은 그야말로 시망스럽습니다.
청주는 지금 소란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언론탄압이므로 조용할 수가 없었지요. 곧이어 39개 시민사회단체가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사회문제로 비화되어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를 적(敵)으로 간주하는 한심한 세력도 있고 바른 소리 듣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 문제는 결국 진보와 수구가 씨루는 듯한 이상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도 부족한 점이 많고 반성해야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시대의 희망이라고 이야기하신 것은 후배들에게 수구스럽다고 비판받던 신형이었습니다. 아, 가을의 신형, 허망함의 나날을 보내는 우리 앞에 미래가 있을까요? 시가 세상을 움직이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끔찍합니다.
신형, 부디 시인이 이 세상을 움직이고 시가 법이 되는 그런 날을 기약합시다. 은하수 냇가에 계수나무 선연한 가을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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