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가을비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상강(霜降)을 지나 입동(立冬)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미상불 시절은 이제 겨울로 접어듭니다. 일엽락천하지추(一葉落天下知秋)요, 나뭇잎 한 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하였거늘 가을은 언제고 이처럼 정취를 느낄만하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곤 합니다.
엊그제는 차를 몰고 대청댐을 돌아 청남대 길 을 가 보았습니다. 차도 양편에 가지런히 늘어선 은행나무들, 나무들은 이미 황금빛 낙엽을 떨구고 있었습니다. 소풍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은 길가 여기저기에 차를 세워 놓고 낙엽을 밟으며 아쉬운 가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때는 권위의 상징으로 얼씬도 할 수 없던 던 길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되어 있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민주화 바람으로 몇 년 새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느낌을 갖기에 족했습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와 노래가 있습니다. R·구르몽의 시 ‘낙엽’과 이브 몽땅 의 샹송 ‘Autumn Leaves’ 말입니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갉’. 요즘이야 사람들이 시를 멀리 하지만 지난 날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이들은 이맘때면 ‘시몬…’을 읊으며 가을을 맞고 또 보내곤 했습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이브 몽땅 의 목쉰 저음이 땅거미 내려앉은 퇴근길 저녁거리에 깔리면 ‘아, 가을이구나’하던 기억은 누구나 새로울 것입니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철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나뭇잎들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노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에 하는 말입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오늘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이런 저런 생각들 말입니다. 나뭇잎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쌓이는 것이 어찌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서 이겠습니까. 조락(凋落)의 의미는 달리 있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만 취해 그 깊은 뜻을 보지 못합니다.
요즘 틱 낫한 스님의 ‘화’가 몇주째 서점 가의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화를 내고 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깊이 있게 다루어져 있습니다. 워낙 화를 잘 내는 민족이다 보니 독자들의 관심이 큰 듯합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화는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화를 내고, 부부간에 화를 내고, 형제들이 서로 화를 냅니다. 친구간에 화를 내고 직장 구성원들이 서로 화를 냅니다. 모두 나만이 옳고 너는 그르다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들이 과연 그렇게 화를 내야 할 만한 일들입니까?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작은 일들입니다. 그런데 들 화를 냅니다. 생각해 봅시다. 화내서 잘 된 일이 있을까요?
연인들이 화를 내면 사랑은 깨집니다. 부부가 화를 내면 가정이 편치 못 합니다. 친구들이 화를 내면 우정은 금이 갑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참을 ‘忍’자를 가슴속에 품고 삽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소란스러운 것은 화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터입니다.
스님의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 하라.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 성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라.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악이다. 화가 났을 때 남의 탓을 하자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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