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자 살인·방화·자살 심각한 사회문제화
충북 턱없이 부족한 치료기관·상담센터 확보 시급

“알코올중독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온가족을 병들게하는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일주일에 한두번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가족을 들들 볶기 시작합니다. 외도, 기물파손, 도박, 싸움, 음주운전, 카드빚까지 문제란 문제는 모두 일으키는 아버지가 미워 야반도주 했지만 시달리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면 제 손으로 아버지를 죽일 것만 같아 제 자신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알코올중독 환자가족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한 인터넷 카페에 여성 네티즌이 올린 글이다. 이처럼 알코올의존성 질환은 가족병이라 불릴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최근 충북에서도 알코올중독 병력이 있는 40대가 살인, 방화, 자살에 이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살인·방화·자살 이르는 알코올중독
24일 오전 청원군 옥산면 오산리에선 알코올의존성 환자인 H씨(57)가 자신의 10여평 단독 주택에 불을 질러 250여만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H씨는 경찰에 방화혐의로 붙잡혀 조사를 받다가 현재 병원으로 후송돼 가족들의 보호아래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의 조사에서 드러난 H씨의 방화동기는 두달 전까지 야채장사를 하던 노점 인근건물에 대형슈퍼가 들어서면서 장사를 거둔 것이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H씨는 술로 매일밤을 지새웠고 아내마저 두 아들곁으로 떠나 버렸다. 홀로 남은 H씨는 속옷 바람으로 집에 불을 지른 채 ‘횡설수설’하다가 인근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

앞서 21일 충주시 문화동에선 P씨(48)가 알코올중독으로 20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던 길에 초등학교 동창생 J씨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 K씨(70)와 막걸리잔을 기울이다 목을 졸라 살해하기도 했다. 마땅히 오갈데가 없던 P씨. 간경화로 2년 전 숨진 J씨와 초등학교 동창생인데다 그 동생을 공사현장서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이 돼 사건발생 두달 전 부터 J씨의 집에서 생활을 해 왔다. 전에도 J씨의 어머니와 함께 자주 술을 마셔온 P씨. 신세한탄을 하며 ‘죽고싶다’는 친구 어머니 K씨의 말에 우발적으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날 P씨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며 공사현장에 있던 J씨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고 J씨는 어머니를 인근병원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끝내 황천길을 떠났다. 같은날 오후 옥천에서도 L씨(40)가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한 부모에게 불만을 품고 집에 불을 질러 단독주택 25평이 모두 불에 타면서 3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L씨의 아버지도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 경제여건이 말이 아닌 상황이었다.10여개월 동안 아들의 치료비 60∼90만원을 대어 온데다 보름전 넘어져 허리를 다친 아내가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자식들도 경제여건이 좋지 않아 부모를 마땅히 도울수 없는데다 집까지 어리석은 아들의 방화로 잃게 되자, 거리로 나앉게 된 상황이다. 지난 15일 청주의료원에선 알코올중독 병력으로 이 병원 정신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던 Y씨(68)가 보호시설 입소뒤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들렀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알코올중독 매년 증가전문치료 턱없이 부족실제 청주 알코올상담센터에 따르면 알코올의존성환자 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일반상담건수는 558건으로 전년도 204건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센터 예방 및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수도 지난해 78건으로 전년도 48건에 비해 2배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충북에 알코올상담센터와 전문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상담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150만명에 이르는 충북에 대형정신병원은 청주의료원과 현대정신병원, 충북대 정신과, 충북 정신병원 등 고작 4개뿐이다.제대로된 알코올상담센터도 12개 시군에 청주알코올상담센터가 유일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건복지부는 오는 2010년까지 전국 20개의 알코올 상담센터를 96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청주에도 20만당 1개소의 상담센터 운영을 고려할 때 적어도 1개소가 더 설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큰 문제는 역시 예산이다. 충북의 150만 인구 중 적어도 40%에 해당하는 60만이 알코올의존성환자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년간 1억4000만원의 소모성 예산으로 상담센터를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언뜻 적잖은 예산으로 볼 수 있지만 4명의 상담사가 12개 시군을 커버하며 사례연구, 알코올중독예방 및 재활프로그램 운영, 여가시간 제공, 직업알선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란 것.박우영 임상심리사는 “유관기관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일을 해낼수 없는 상황이다. 알코올중독이 어느 한사람의 치료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가족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1차적으로 술을 끊고 이를 스스로 견디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재활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지 문제’로만 보면 큰 착각 ▲ 청주알코올상담센터 박우영 임상심리사
청주 알코올상담센터의 박 심리사는 알코올 중독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장 큰 오해가 ‘의지의 문제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심리사는 “의지는 뇌의 작용이다. 일반인들은 술을 심하게 마시면 술을 멈춰야겠다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일반일들이 10개가 나온다면 중독자들은 세개 밖에 안나오고 일곱개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걸 무턱대로 의지로 만들라면 되겠나(?) 병원에서 약물치료(항갈망제)로 세개를 보충해주고 교육(재활프로그램)으로 나머지 네개를 만들어야 치유가 되는 것”이라고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청주알코올상담센터는 알코올중독 환자 및 가족을 위한 전문 상담실과 재활치료실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여가선용 프로그램으로 1년에 4차례 가족캠프와 한지공예 등도 하고 있다. 또 유관기관과 함께 직업알선도 해주고 있어 알코올중독자의 재 사회화를 돕고 있다.

지역의 병·의원과 복지시설, 단주모임 등과도 알코올 중독 예방과 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심리사는 “매주 수요일 제천까지 출장상담을 가다 보면 사무실이 텅텅비기 일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근무를 하는 것은 역시 알코올의존성환자들이 빠르게 회복돼 사회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재발도 많은 만큼 스스로 술을 절제할 수 있도록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청주알코올상담센터(문의전화 272-0067)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치료프로그램 운영 ▲심리평가 ▲치료기관 지원연계 ▲가정방문 및 사례관리 ▲알코올 교육 ▲자조모임 등을 진행한다. 일반인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알코올 관련정보 ▲알코올 교육 ▲건강강좌 및 세미나 ▲심리평가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심리검사 등 특정검사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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