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년의 돌다리 남석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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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의 돌다리 남석교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6.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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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의 돌다리 남석교엔 수많은 사람들의 족적이 묻어 있다. 서원경의 관리에서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 무심천을 가로지른 남석교를 통해 양 쪽을 왕래하였다. 고려시대 공민왕도 남석교를 통하여 안동으로 파천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무인시대의 주인공 경대승 또한 이 다리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조선시대, 남석교 건너 분평동 일대에는 정진원(情盡院)이라는 관리들의 숙박소가 있었다. 분평동 택지개발로 정진원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명종 때의 성리학자 성제원(成悌元:1506~1559)과 청주목 관기 춘절(春節)의 고고한 로맨스는 청사(靑史)를 타고 무심천에 아롱져 흐른다.

육체적 사랑 없이 정신적 사랑만 추구한 두 사람의 애달픈 러브스토리는 청주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요 ‘로마의 휴일’이다. 두 사람은 산천을 유람하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하니, 데이트 코스로 필히 남석교도 거닐었을 것이다.

동학농민전쟁당시 수많은 농민군은 이 다리를 오가며 피를 흘렸고 5일장을 보는 장돌림들도 가래토시가 서도록 이 다리를 왕래했던 것이다. 구한말까지 청주장은 한강이남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청주쇠전은 김천, 수원과 더불어 3대 쇠전이었고 약령시는 대구 다음으로 꼽았다.

남석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자 가장 규모가 크다. 1923년 일인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 )는 ‘청주연혁지’에서 남석교가 한(漢)나라 선제(宣帝) 오봉원년(五鳳元年)에 건립되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 연대는 박혁거세 즉위 원년인 BC57년에 해당한다.

남석교의 규모에 대해선 구구각색이었다. 지금까지는 길이 64m, 너비 4m로 알려졌고 또 어떤 기록에는 70m에 이른다고 했다. 지하에 묻혀있기 때문에 정확한 제원을 실측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2004년 11월에 청주대 김태영 교수가 실측한 자료에 따르면 3행 26열의 석주로 이루어진 남석교는 길이가 80.85m이고 상판은 약 1.5m 크기의 청판돌을 2열로 깔아 너비는 3m이상으로 우마차가 교행할 정도였다. 높이는 하천바닥에 묻힌 지대석과 1m 가량의 돌기둥, 그 위에 얹은 멍에, 장귀틀, 상판석을 더해 2m50cm에 이르고 있다.(충청리뷰)

그전에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 앞의 ‘살곶이 다리’가 길이 70m로 가장 긴 돌다리였는데 이번 조사 결과 청주 남석교는 이보다 10m 이상 더 길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돌다리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남석교의 복원은 역사도시 청주시의 큰 명제다.

그러나 현재로는 물길이 바뀐 데다 발굴에 따른 토지 보상 등을 따지면 남석교 복원에는 3백억 원~7백억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마저도 토지소유주의 승낙이 없으면 추진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남석교의 복원은 불가피하게 차선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무천천에다 남석교 모형을 45m로 축소 복원한다는 얘기인데 이럴 경우 남석교 본래의 이미지가 퇴색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돌다리가 별것 아닌 것으로 일반에 곡해될 우려가 있다. 반토막 복원은 복원이 아니라 축소모형 설치에 불과할 뿐이다. 하상도로의 차량통행이나 홍수피해 등이 우려되어 제치의 복원이 어렵다면 차라리 그냥 두는 편이 더 낫다. 남석교의 무심천이전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문화재는 제 위치를 떠나면 값어치가 반감된다.    / 언론인·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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