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덕 현 편집국장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합당은 아주 전격적이었는데도 언론에서 크게 대접받지 못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공당의 갑작스런 ‘합침’은 예삿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나라당이 자민련을 끌어들인 것은 악수다. 합당의 명분을 충청권 표심확보라고 밝히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한나라당 희망대로 다 쓰러져가는 자민련을 거둬 들였다고 해서 충청권 민심을 일거에 보장받을 수 있다면 아마 지금쯤 심대평의 국민중심당은 적어도 충청권에서 만큼은 지지도 1위를 치고 나와야 정상이다. 그러나 충청발 국민중심당은 자민련 의원을 거의 다 영입하고도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충북에선 아예 바닥을 기는 형국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를 충청권 표심에서 찾으려는 한나라당의 혜안은 백번이고도 옳지만 그렇다고 기력이 쇠할대로 쇠한 자민련을 얻은 것으로 5월 지방선거와 내년 대선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충청권 민심을 그런 식으로 말랑말랑하게 봤다는 자체가 아주 기분 나쁘다.

한나라당이 자민련과 합당할 생각까지 한 것은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와는 상반된 정치적 유연성이 엿보이는 것으로, 재집권에 대한 의지가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97년과 2002년 대선에 대해 한나라당과 관련된 한가지 분명한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97년 대선실패는 YS 품에서 뛰쳐 나온 JP를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2002년 대선실패는 민주당 경선을 박차고 나온 이인제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사실 당시 이회창 대세론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만약 한나라당이 JP와 이인제를 받아들였다면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의 대선실패는 정권탈환을 학수고대하는 한나라당에 분명한 교훈을 안겼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이 몰락한 자민련과의 통합이나, 더 나아가 민주당 및 국민중심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모색으로 나타난다면 재집권은 또 틀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세확산이 절대 아니다. 이미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진 당세(黨勢)를 주체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민심은 언제든지 변한다. 문제는 바람에 흩날리는 새털과도 같은 이런 민심이지만 항상 출구(出口)를 원한다는 것이고, 그 출구는 결국 희망과 기대감이다. 이회창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DJ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장본인은 네티즌도 개미군단도 아닌, 그들이 묵시적으로 공유한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을 보면 정치적 추구는 없고, 정치적 욕심만 있는 것같다. 미증유의 지지도를 향유하면서도 오히려 조바심은 더 하다. 내가 보기엔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 외엔 일관된 추구가 없다. 사학문제를 진솔하게 고민하기도 전에 거리부터 뛰쳐 나왔다가 백기를 든 것이나, 노대통령을 나라 팔아먹을 사람이라고 극단으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쫓기는 심정이 과연 국민들에게 어떻게 반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에 묻고 싶다. 5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를 자신할 수 있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방선거와 관련해 시종일관 경선원칙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한나라당 충북도당은 그나마 위안(?)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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