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동시 아우르는 처신” 평가
어차피 정동영과 같은 배 운명, 향후 여론추이에 촉각
한범덕 전 정무부지사가 결국 열린우리당에 안착했다. 21일 입당식은 정동영 당의장을 비롯 충청권 국회의원 등 다수가 배석함으로써 강한 이벤트성을 띠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충북도당은 내심 중앙당 전당대회와 한 전 부지사 입당을 연계시켜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었다.

어쨌든 새로 선출된 여당 당의장까지 입당식을 장식했다는 것은 한 전 부지사에게 나름대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정동영의장이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열린우리당 충북도당은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한나라당 정우택 전장관이나 한대수 청주시장에 비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밀렸던 지명도를 높이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런 정치적 역학관계에 시종일관 뜨악한 표정이다. 오래전부터 절친한 친구관계인 정동영 변수를 의식해 열린우리당 입당이 점쳐졌지만 본인은 “친구와 정치적 선택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했고, 마지막까지 뜸을 들인 것이다.

▲ 한범덕 정무부지사의 열린우리당 입당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는데도 본인의 등거리 처신으로 늦어진 것이다. 이런 숙시주의가 과연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진은 입당 기자회견 장면 /사진=육성준기자

올 지방선거는 내년 대선과 무관하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 행정가를 원한다”며 정동영과의 관계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거리감을 준다. 이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하나같이 정동영=한범덕을 패키지로 인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 전부지사의 이런 처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원종 효과론이다. 이원종지사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그가 이지사 지지자들을 그대로 안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이런 해석을 내렸다. “열린우리당은 앞으로 한범덕씨 선거운동에 올인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한 전부지사가 떠야 다른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한 전부지사 입장에선 열린우리당 공조직에 의한 표는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확보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도내 국회의원 모두가 열린우리당이라 이쪽에 2중의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지사에게 끊임없이 고공의 지지도를 안겼던 절대적 지지자, 즉 매니아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현재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적으로 뒤지는 이유 때문에도 그렇다. 쉽게 생각해 열린우리당 조직표에 한나라당 성향인 이지사 지지표를 합친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나. 이 때문에 한 전부지사는 정동영과의 인연보다는 과거 모셨던 이원종지사와의 관계를 더 부각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이지사에 대한 한 전부지사의 정성은 각별하다. 자신의 출마설이 불거질 때부터 항상 이지사의 그늘 밑에 처하기를 자처했고, 특히 이지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바이오충북건설의 후계자임을 은연중에 강조한 것이다. 지난 21일 입당과 관련 배포한 ‘도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이런 노력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여기에서 “바이오토피아 충북은 정말 잘 선택된 우리의 비전이며 전략입니다. 이미 이것은 오송, 오창, 충주, 제천, 단양을 잇는 첨단산업벨트의 조성,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선정등과 함께 상당부분 그 기반이 완성되었습니다. 충북의 비전인 바이오토피아 충북건설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일념에서 입당하였습니다”며 예의 바이오토피아 적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원종-한범덕 관계는 여전히 많은 궁금증을 안긴다. 이지사의 전격적인 불출마와 정계은퇴 이면엔 한 전 부지사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억측에서부터 정진태 전 산자부장관 정책보좌관이 후임 정무부지사에 내정됐다가 철회된 배경 역시 한범덕 변수라는 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얘기들을 몰고 다녔다.

이에 대해 한 전부지사는 “지난 명절날(설날)에 관사로 가 인사를 드렸더니 ‘열심히 하라’는 격려만을 하셨다. 사실 이지사님의 불출마는 나도 마지막까지 몰랐다. 어쨌든 출마를 결심했기 때문에 나로선 이지사님의 기와 힘을 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사님과 나의 관계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억측은 사실과 다르다.

바이오토피아는 내가 지사님을 모시며 많은 부분 관여했기 때문에 애착을 갖는 것이고, 실제로 충북의 미래를 위해선 이 과업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완수돼야 한다. 선거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는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범덕 전 부지사가 정치적 휘말림을 극구 피하더라도 결국 정동영의 향후 입지에 크게 영향받을 것으로 내다 본다. 같은 운명에,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만약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지방정부 심판론을 5·31 지방선거의 화두로 몰고 가는 정동영 전략이 유권자에게 먹혀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한 전부지사는 득표에 많은 이득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해 지역의 한 정치전문가는 “한범덕씨는 그동안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선택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지만 내가 보기엔 안 그렇다. 오히려 대단한 정치적 순발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양동작전이 그렇다. 일단 열린우리당 표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지사 적자론을 내세워 한나라당 표까지 잠식하고 있다. 이지사의 중도하차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노장년층은 이지사에게 절대적인 지지층이었다. 이것을 얼마나 공략하느냐가 한 전부지사 성패의 관건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결국 뜸을 잔뜩 들인 후의 열린우리당 입당인 만큼 한 전 부지사는 앞으로 정해진 수순의 여론반전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한 전부지사가 당선권으로 부상하기 위해선 여론의 ‘조기 부양’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정당 선택과 함께 본격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오랫동안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한 전 부지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현 정당 구도로 볼 때 고전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