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경선 공천심사에 쏠리는 눈, 유권자 심판 의식해야

한나라당, 정실공천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
열린우리당, 시민운동가 검증으로 투명성 확보

한나라당 충북도당이 지난 14일 5·31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이후 벌이지는 현상은 일반인의 예상을 전혀 실망시키지(?) 않았다. 출마 예상자들이 사활을 건 로비와 청탁에 돌입한 것이다. 물론 여기엔 각종 인맥이 총동원된다. 후보에 따라선 공천심사위원별로 아예 담당자를 정해 놓고 접근을 시도할 정도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요즘 전화나 휴대폰 받기가 겁난다. 한 위원은 “어느 정도 대비는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한테도 청탁이 들어 온다. 말 그대로 지역사회의 한계를 절감한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라는 속설이 정말 맞는 것같다. 요즘은 이상한 버릇까지 생겼다. 휴대폰이 울리면 찍힌 전화번호를 한참 보고서야 받는다.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번호는 받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도 22일 공천심사위 명단을 발표하고 후보 검증을 위한 본격 준비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공천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상태다. 도내 국회의원들이 오효진 청원군수를 청주시장 후보로 전략 공천키로 했다가 당원들로부터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곧바로 밀실 공천이라는 당내 반발에 부딪혔고 급기야 지난 20일 도당 기획위원회(위원장 유행렬) 주최로 당원토론회까지 열렸다. 이 자리에선 경선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상무위원회에 넘겨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불가피한 경우의 전략공천을 인정하되 세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후보가 없거나, 경선 희망자간 지지율이 현격하게 차이나는 지역, 그리고 경선 희망자에게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 있을 경우엔 전략공천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현 열린우리당의 당내 여론이라면서 이렇게 전했다. “국회의원들끼리 오군수 전략공천을 합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의 전체 의견이 될 수 없다. 의원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가 책임추궁을 하니까 이미 일은 저질러 졌는데 서로 면피성 발언에 급급하더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적 정당이니 정책 정당이니 떠들던 사람들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큰 좌절감마저 갖게 됐다. 일련의 과정들이 불필요하게 당내 분열로 비쳐지는 것도 원치 않지만 현역 의원들의 구태적 발상은 더 더욱 간과할 수 없다. 후보 경쟁력은 1차적으로 당원 지지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국회의원 몇 명 한테서 생기는 게 아니다.”

5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의 가장 큰 고민은 후보공천 문제다. 일찌감치 선진 정치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진보정당인 민노당을 제외한 보수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공천 문제로 항상 홍역을 치른다. 오는 5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경선 원칙과 공정한 심사를 누차 강조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현실로 성사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각 당의 공천심사위 명단 발표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열린우리당의 오효진군수 파문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싹수가 노랗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공천심사위원들의 면면이나 다짐, 개혁·소장파들의 움직임을 보면 ‘민주적 공천’ 가능성의 끈을 완전히 놓을 단계는 아니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첫 모임에 이어 22일 2차 회동을 가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투명, 공정한 공천을 다짐했다.

윤의권위원(청주 상당 운영위원장)은 “정치적 신념과 지역 현안에 대한 확실한 소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자질 검증에 초점을 맞추겠다. 인맥이나 학맥 등 각종 연고에 의한 정실 공천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 심사기준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어차피 위원 전체의 평가를 계량화 해 최종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사적 감정이 개입할 소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 봤다.

또한 외부 인사 위촉에 해당되는 김양희위원(충북청소년자원봉사센터 소장· 주성대 겸임교수)은 봉사론을 펴며 향후활동 계획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이번 심사위 활동을 정치발전을 위한 봉사라고 여기겠다. 봉사의 순수한 취지를 살려 원칙대로 후보자를 평가할 것이다. 밖에서 공천심사위 위원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겠다. 심사위의 목표는 분명하다. 전문성과 신뢰, 실력을 겸비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동기부여가 확실한 후보를 골라 내겠다. 편협한 정치의식의 소유자나, 개인적 사업의 배경으로 지방의원을 넘보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하겠다. 공천 탈락 등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로부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적어도 그 외 다수의 사람들로부터는 절대 욕을 먹지 않겠다. 그러기 위해선 적격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활동성을 인정받는 외부 인사를 심사위에 포진시켜 향후 심사자체가 녹록치 않을 조짐이다. 윤석위위원(충북숲해설가협회 상임대표)의 경우 본인의 극구 고사에도 불구, 당에서 심사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외부 인사로 위촉한 케이스. 그는 “한 때 시민운동가로서 사실 공천심사위 참여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운동으로 외쳐 온 정치개혁을 실제로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스스로 대안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응하게 됐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과연 어떤 후보가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에 진출해야 하느냐를 끝까지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시민단체 내부에선 오히려 시민운동가들이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 나 정당의 공천심사위에 공세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또 다른 위원은“1차적으로 열린우리당과 지방자치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는 배제될 것이다. 과거처럼 공천심사를 요식적 절차로 끝내지는 않겠다. 앞으로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구체적 절차나 평가 기준 등을 만들겠지만 심사위 결정이 후보선정에 결정적 요체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공천심사위원들의 의지에도 불구, 과연 민주적 절차를 준용하는 제대로 된 공천이 이루어질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상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의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과 중앙당, 당직자들 입김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 17대 총선 때도 후보경선이 당초 각 당이 내건 지상과제였지만 막상 충북에선 청주 흥덕 을(한나라당)과 보은옥천영동(열린우리당) 단 두곳에서만 경선이 이뤄져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케 했다. 선거가 임박하면 오직 당선 가능성에만 집착하게 되고,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 운영위원장 인맥이나 당 차원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원칙’을 고수하기란 쉽지가 않다.

심사위 평가결과를 공천에 연계시키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로선 점수로 계량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정치적 문제를 놓고 이처럼 정량평가하는 것엔 여러 문제가 따른다. 상황에 따라선 정성평가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모 공천심사위원은 “지역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즉 과거의 지구당위원장은 자신 선거구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심사위에 소개, 상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만약 특정 운영위원장이 정실에 얽매여 불공정한 심사를 하게 되면 당연히 다른 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물론 평점이 비슷비슷한 경우엔 운영위원장이나 다른 심사위원들의 조율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 외엔 심사위 평점이 공천의 절대적 잣대가 될 것이다. 경선을 하더라도 먼저 심사위에서 자격 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심사위 결정이 공천의 최우선 관건이 될 것이다. 지방의원의 경우 앞으로 연간 7000만원의 혈세가 세비로 지급되는데 엉성한 사람들을 내세울 수 있겠나. 7000만원은 고양이 밥이 아니라 오히려 후보자들을 옥죄는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공천심사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지금으로선 외부 인사로 위촉된 위원들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지역정가에선 이미 이들이 공천심사의 성패를 가름할 것으로 내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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