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라대왕이 세상에서 명을 다하고 올라 온 죽은 이들을 천국으로 보낼 것인가, 지옥으로 보낼 것인가 재판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밖에 방금 잡혀온 이서방이 저승사자와 승강이를 벌이느라 시끄러웠습니다.

염라대왕이 “왜 이리 시끄러운고?”하고 호통을 치자 저승사자가 나서서 대답을 했습니다. “이놈이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가야하는데 착한 일을 한가지 했으니 천당엘 가야 한다고 억지를 쓰지 뭡니까”

염라대왕은 “그래 네가 무슨 착한 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서방이 얼른 대답하기를 “그게 말이죠, 제가 길을 가다 천 원을 주웠거든요. 그래 그 천 원을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이 서방은 의기양양하여 천당에 가야 한다고 떼를 썼습니다. 염라대왕은 지체없이 땅, 땅, 땅 최종 판결을 내립니다. “야, 쟤 천 원 줘서 지옥 보내!” 판결 중의 ‘명 판결’이었습니다.

재판이라면 단연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의 판결’이 압권(壓卷)입니다. 갓난아기를 놓고 서로 제 자식이라고 싸우는 두 어머니에게 아기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라고 해 진짜 엄마를 찾아 주었다는 솔로몬의 지혜는 명 판결의 백미(白眉)로 유사이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이야말로 공정성은 물론 범인까지 가려내는 명 판결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최근 기업인 범죄에 대한 엄벌을 강조해 논란이 일고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번에는 “재판은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법부의 대 국민 신뢰회복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대법원장은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에게 재판권을 수여한 주체가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며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사법부의 성찰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대법원장의 잇단 발언은 그 동안 우리 법원이 재판권 행사를 올바로 하지 못 했다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것이어서 국민들의 귀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여러 얘기를 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사법부에 대한 나쁜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남의 돈 몇 만원을 훔친 도둑은 예외 없이 단죄(斷罪)되면서 돈 많은 기업인이나 정치인은 큰 죄를 짓고도 죄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을 그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언필칭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교과서에나 있는 말일 뿐 그걸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대한민국에서 ‘만인’은 1만명 정도의 특권층”이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법이 평등하다는 것은 허구(虛構)의 말장난에 불과할 뿐입니다.

작심한 듯 한 이대법원장의 이례적인 의사표명은 평소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재판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대법원장이 그런 비판을 예상하면서까지 스스로의 살을 깎는 고언(苦言)을 한 것은 실추된 사법현실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마 사법부의 장이 국민들의 법 감정을 인식하고 자아비판을 통해 할말을 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대법원장의 현실인식과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법원은 사회정의와 인권의 최후보루입니다. 힘없는 국민들이 재판으로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법원의 사명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 이대법원장의 발언이 사법부 변화의 출발점이기를 기대하는바 큽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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