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과 조흥은행의 이중적 태도가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정부의 합병 조치에 충북은행 직원과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벌이는 모습.
약속어긴채 곡예하듯 버젓이 줄타기 계속
"스스로 대주주로 있는 시중은행의 본점 이전문제조차 제때 해결하지 못한다면 누가 정부의 정책의지와 일관성을 믿겠는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어겨가며 곡예하듯 줄타기만 하는 은행 때문에 같은 충청도 지역간에 갈등만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
조흥은행 본점의 중부권 이전문제가 당초 약속시한을 넘긴채 시일만 질질 끌면서 충북과 대전·충남지역간에 가열되고 있는 유치경쟁이 자칫 두 지역간 치유할 수 없는 갈등으로 비화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이에따라 사태가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 조흥은행 본점의 중부권 이전 문제를 방치해 온 정부의 무원칙한 정책태도와 은행측의 시간벌기식 줄타기 '곡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사실 조흥은행 본점의 지방이전은 더 이상 흥정대상이거나 정치적 논리로 인해 훼손돼야 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IMF직후 대대적인 금융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당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조흥은행과 지방은행인 충북·강원은행간 합병을 전제조건으로 공적자금 투입-긴급회생의 절차를 거쳐 조흥은행을 사실상 지역은행으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조흥은행 본점을 지방(중부권)으로 이전함으로써 금융 및 산업의 수도권 집중현상을 완화한다는 목적뿐 아니라 당장 퇴출(충청은행)또는 합병(충북·강원은행)으로 지방은행을 잃은 중부권의 민심도 '선무'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시한(時限)을 넘겨 새해를 맞도록 장기간 이행되지 않은 채 미제로 남으면서 대전·충남과 충북에서는 저마다 조흥은행 본점의 '중부권 이전'에 대해 동상이몽에 빠지거나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며 일희일비하는 등 소모적 감정낭비와 정부·은행의 '처분'만 기다리는 기막힌 상황역전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전·충남지역에서는 연초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불거진 '조흥은행 본점 청주 이전설'에 대해 즉각 반발하는 등 심상찮은 민심동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99년 초 강원은행과 합병하면서 은행측이 본점 이전 후보지로 대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던 사실에 근거, 최근 정부와 은행측의 말바꾸기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더구나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대전이전설은 한약방의 감초처럼 수면위로 부상하곤 했다.
김주일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은 언론에 배포한 '조흥은행 본점의 대전이전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에서 "본점의 청주이전설로 지금 지역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최근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금융기관의 신뢰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며, 이런 연장선에서 당초 약속대로 본점 전체가 대전으로 이전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옛 충북은행 출신 임원은 "은행측에선 약속시한을 어기고도 버젓이 본점의 전체기능을 지방으로 옮기는 건 현실적으로나 경제논리상 불가능하다며 배짱을 부리고 있고, 나아가 당초 충북도민에게 약속한 지방은행 역할 수행마저 이행하지 않고 있는 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신의에 대한 배반"이라며 "다급할 때 한 약속을 이제와서 한숨 돌렸다고 그럴듯한 경제논리로 포장해 헌신짝처럼 저버리려는 속셈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처럼 은행측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상황을 즐기듯 약속과 달리 본점기능의 20%만 옮기는 방안에 대해 저울질하고, 본점이전 후보지 결정과 관련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데도 충북, 대전·충남에서는 그때마다 일희일비만 할 뿐 본말전도의 상황전개에 대해 엄중한 항의와 경고조차 보내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런 가운데 이원종 지사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본점의 실질적이고 완전한 이전이라는 제2의 본질적인 문제는 빼버린 채 "충북은 대전보다 (조흥은행 입장에서 볼 때) 여수신 규모와 직원 수에서 앞서고, 오송생명과학단지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라며 청주로의 본점이전 당위성에 대해서만 집중 거론하며 자신감을 피력, 온갖 추측을 낳고 있다.


"이전 없었던 일로..." 음모론 제기 눈길 지역갈등 빌미... 태권도공원 꼴 날라
“주의! 지역갈등이 심화되면 이를 빌미로 정부와 은행측에서 본점이전 문제를 없던 일로 할 지 모른다.”
충북과 대전·충남지역간 조흥은행 본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두 지역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본점이전 문제가 무기 연기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있다.
음모론적 시각에 바탕한 이런 경고는 주로 대전·충남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꽤 설득력이 있다.
김주일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은 언론에 배포한 성명서에서 "한때 대전으로 옮기겠다던 은행과 정부가 어느날 '중부권'으로 말을 바꾸더니 이제는 청주이전설이 나돌고 있고, 나아가 형식적인 이전 얘기마저 나오는 등 본점이전의 의지자체를 의심케 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며 "더구나 우리는 청주로의 이전여부보다 양 지역의 유치경쟁을 부추겨 놓고 지역간에 대립양상이 전개되면 그때 가서 지역간 갈등해소를 명분으로 본점 이전을 백지화시키려는 의도를 더욱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회장은 그 근거로 해양경찰청 사례를 들었다.
대전시는 지난해 말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 본청을 거의 유치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봐야했다. 해양경찰청에서는 전국토의 중심부로 접근용이성이 뛰어난 대전에 본청을 이전키로 사실상 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대전시에 통보했고, 대전시에서는 본청 건물이 들어설 땅의 용도변경까지 마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다. 그러나 "내륙도시에 웬 해양경찰청이냐"며 뒤늦게 부산 목포 등 항구도시들이 유치전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지자 정부는 지역갈등을 우려해 이 문제를 없던 일로 백지화한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진천 보은을 비롯해 전국의 수십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에 열을 올렸던 태권도공원 조성사업도 지역갈등 양상이 가열되자 계획자체를 사실상 백지화한 선례도 있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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