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강조인가, ‘고시 우월주의’인가

정치권에서 법조인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당 선대위 조직의 면면을 보면 법조인 선호현상을 넘어 ‘로펌(법률회사)’을 방불케 한다. 그만큼 사법고시 출신자가 수두룩하다.
우선 당 외곽 인사로 서울 행정법원 판사 출신의 나경원(사시 34회)씨가 선대위 여성담당 정책특보로 전격 수혈됐고, 조윤선(33회) 변호사는 정당 사상 최초로 여성 대변인에 기용됐다. 나경원 전 판사는 지난 1995년 국민회의에 입당한 추미애 민주당 의원(당시 광주고법 판사)에 이어 현직에서 바로 정치권에 뛰어든 두 번째 여성 법관이 됐다. 권철현 후보비서실장은 잇따른 여성 법조인 발탁에 대해 “의도된 게 아니라 별개의 추천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당내 율사 출신으로는 오세훈(26회)·김영선(30회) 의원이 나란히 이회창 후보 수행부실장에 임명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후보를 보좌한다. 지난 8·8 재보선에서 당선돼 대외협력특보로 재기용된 박진 의원도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이 후보의 핵심 측근인 서정우 법률특보도 법무법인 ‘광장’ 출신이다. 선대위의 살림을 책임지는 김영일 총괄본부장은 이 후보와 같은 고시 사법과(8회) 출신이다.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인 최연희(14회) 의원, ‘저격수’로 통하는 정책공약위 제1본부장 홍준표(24회) 의원 등 핵심 당직자도 사시 출신이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도 이 후보와 같은 법조인 출신이지만 상대적으로 노 후보 진영에는 율사출신이 많지 않다. 민주당 선대위 핵심요직과 특보 중에 율사 출신은 이상수·천정배·신기남·추미애 의원 등 4명에 불과하다.
이회창 후보가 율사 출신을 전면 발탁한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법조인 출신인 이 후보의 인재풀이 한계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한나라당의 지지층 확대 차원에서 보면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사회 전체적으로 팽배해 있는 ‘고시 우월주의’를 이회창 후보의 용인술에서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물론 이 후보 자신이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경력보다 법조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하다는 것도 법조인 발탁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5공 시절 민정당도 법조인 출신이 많아 ‘육법당’(육사+서울대 법대)으로 불렸다. 이회창 후보의 인맥은 KS(경기고-서울대 법대) 학맥과 법조계가 양대 축이다. 특히 서울대 법대를 바탕으로 하는 법조계에는 이 후보 인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한편 이 후보는 법조계 인맥에 의한 외연 확장뿐 아니라 후보 법률고문과 법무특보직을 신설해 비서실의 법률보좌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내실도 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올해 대선도 97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 후보의 개인 신상에 대한 각종 네거티브전이 전개될 것으로 판단해 이러한 공격과 언론보도에 법적으로 적극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칫 이 후보 눈에 거슬리는 비우호적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 남발 우려도 지적됐다. 후보 법률팀은 이미 <한겨레> 신문에 실린 언론인 정경희씨 칼럼을 문제삼아 정씨를 상대로 5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오마이뉴스>에 대해서도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 보도와 관련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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