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3당 합당 이후 정치철새 증가 …‘대세추종형’이 다수 차지
15대 국회, 73명이 당적 변경 … ‘의원임대형’ 해프닝도

한 자료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지난 1955년부터 40여년 동안 당적을 변경한 의원은 15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체제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눈부시다고 해야 할 판이다. 특히 90년 3당 합당은 ‘철새 정치사’의 분수령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당 합당이 전통적인 여야 구도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철새정치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88년부터 92년까지 13대 국회의 회기 동안 당적을 변경한 의원은 모두 55명에 달했다. 또한 14대 국회(92∼96년)에서도 75명의 의원들이 모두 118회에 걸쳐 당적을 바꿨다. 역대 국회 사상 최다기록이었다. 몰론 14대 국회에서 당적 변경이 많았던 이유는 통일국민당과 신정당의 합당으로 인한 신민당의 창당, 자민련의 신민당 흡수,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탄생 등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컸기 때문이다.
96년 개회한 15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15대 국회 동안 당적을 변경한 의원은 73명으로 이들은 107번에 걸쳐 당적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의원수(299명)의 24.4%에 달하는 수치로 의원 4명 중 한 명 꼴로 당적을 갈아치웠다는 얘기다. 물론 16대 총선 직전에 터져 나온 ‘공천파동’으로 여야 중진의원들이 각각 민국당과 한국신당을 창당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당적 변경이 많았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97년 정권교체에 따른 야당의원들의 여당행 때문이었다. 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98년 한해 동안 27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동여당인 국민회의(18명)와 자민련(9명)으로 각각 말을 갈아탔다. 정권교체 이전까지만 해도 165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이 98년 말 139석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98년 9월 탈당자들(의원 26명과 광역단체장 1명, 기초단체장 15명)에 대한 ‘규탄 화형식’까지 열었다. 당시 신경식 사무총장은 규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헌국회 이래 당을 등지고 동지를 배반한 사람들이 한때 따뜻한 양지를 쬐기는 했지만 끝내 수렁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당적을 바꾼 ‘정치철새들’은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츠신문 <굿데이>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4대 국회의 경우 철새 의원은 모두 18명인데 이 가운데 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에 성공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또 15대 국회에서 발생한 38명의 정치철새 중 16대 총선에 당선된 의원은 13명(34.2%, 전국구 2명 포함)에 불과했다. <굿데이>의 지적처럼 “당적을 바꾸기는 쉬워도 유권자들의 마음까지 돌리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정치철새는 역시 ‘대세추종형’이 압도적이다. 전형적인 ‘해바라기형’ 혹은 ‘양지지향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중 “야당생활은 못하겠다”며 권력교체기 때마다 여당을 고집하는 ‘여당지향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92년 대선 때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국민당으로 정치인들이 몰렸다. ‘재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12대 민정당 의원이었던 봉두완·홍성우 전 의원도 재빨리 국민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대권도전에 실패하자 상당수는 국민당을 탈당해 다시 민자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심지어 김길홍·차화준·송천영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민자당에 입당했다.
96년 총선 때에는 김재천·원유철·황성균·김일윤·박시균·박종우·임진출·김용갑 의원 등은 무소속으로 당선됐음에도 선거 직후 바로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또한 97년 정권교체 직후부터 2000년 16대 총선 전까지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이동한 한나라당(야당) 의원 수는 29명에 이른다. 물론 한나라당도 최근 한승수·전용학·이완구 의원을 영입하면서 ‘앙갚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전용학 의원은 한나라당 입당의 변에서 “이회창 후보의 집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스스로 ‘대세추종형’임을 고백했다.
2000년 1월에 일어난 홍사덕 의원의 ‘철새 행각’도 ‘양지지향형’ 정치철새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홍 의원은 당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함께 개혁신당인 ‘무지개연합’을 출범시켰지만 출범식이 끝난 지 8일 만에 한나라당에 입당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놀라운 변신술을 보여주었다. 그는 ‘새천년 첫 정치철새’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정치철새 유형 중 가장 압권은 역시 ‘의원임대형’이다. 지난 2001년 1월 배기선·송석찬·송영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에 입당한 이른바 ‘의원임대’ 사건이 터졌다. 당시 송석찬 의원은 “공동정권의 회복을 위해 정치생명를 걸고 죽음을 선택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의원임대’ 사건은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 주기 위한 국민회의의 정략이었다. 심지어 강창희 의원이 의원임대에 반발해 탈당하자 2차로 장재식 의원을 다시 자민련에 임대해주는 ‘정치코미디’를 연출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송석찬 의원이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을 촉구하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있었다. 여기서 송 의원은 그 유명한 ‘연어론’을 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대통령님과 민주당을 떠나 자민련 입당을 결심한 순간부터 한 마리 연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태어난 고향을 떠나 성숙한 뒤 일생일대의 성업을 위해 강을 거슬러 마지막까지 힘을 쏟아 알을 낳은 뒤 생을 마감하는 연어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대한민국 국회에는 국회의원 272명과 연어 한 마리가 있다”고 비아냥댔다. 그리고 자민련에 임대한 네 명의 의원들은 2001년 9월 초 DJP 공조가 깨지면서 다시 민주당에 복귀했다. 정말 씁쓸한 21세기 정치철새사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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