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호 한국은행 충북본부장 “1은행 2체제의 하나은행 본받아야”
아무리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하는 21세기 전장터라고 해도 미사일과 대포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선 수류탄과 소총 등 개인화기가 꼭 필요하다.
실물경제의 핏줄이라는 금융도 마찬가지다. 50억-100억 이상 대규모 여신을 기업에게 제공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는 '대동맥'의 시중은행이 있으면, 평소 중소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필요할 때 5억 10억씩 소규모로 피를 공급해 주는 '작은 동맥', 지역은행도 있어야 한다. 물론 금고 등 제2 금융권의 실핏줄도 없어선 안될 존재다.
이렇듯 단계별로 피(돈)를 공급해주는 동맥(금융기관)들이 탄탄하게 구축돼 있어야 경제라는 몸통의 혈액순환은 원활해 진다. 이를 전문적으로 말하면 '자금조달의 계층구조(financing hierarchy)'라고 일컫는데, 충북은 지난 3년여간 자금조달 계층구조가 거의 와해돼 버렸다. 충북은행을 비롯해 청솔종금 신용금고 리스회사 등이 줄줄이 퇴출되거나 합병으로 사라져 버린 때문이다.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B아파트에 사는 주부 신모씨(37)는 은행에 볼일이 있을 때면 걱정부터 앞선다. 예전엔 충북은행 분평출장소가 가까이 있어 편리했는데 조흥은행과 합병된 이후 점포가 폐쇄돼 주변에 금융점포가 전무한 때문이다. 따라서 신씨는 멀리 우체국까지 가서 일을 처리하고 있지만 늘 몰려드는 손님들로 대기시간이 길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등 이중삼중의 불편을 겪고있다. 지난 연말 같은 때는 물론 월말만 되면 짜증이 다 날 정도다.
신씨는 "충북은행과 조흥은행 합병이후 주민들은 조흥은행에 대해 옛 충북은행과 같은 정서를 갖고 생각해 왔는데 은행측은 이같은 지역의 정서만 이용해 온 것 같다"며 "합병할 때는 지방은행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해 놓고 실은 은행의 수익성만 내세워 고객 서비스는 고려않고 점포를 무더기 폐쇄해 온 게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보은에 있는 D식품은 충북은행이 없어진 이후 불편과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조흥은행이 적자점포라며 보은지점을 폐쇄한 이후 D식품은 금융거래를 위해 옥천지점까지 가야하는 시간적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 때문에 요즘은 농협과의 거래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을 전문 생산하는 음성의 K기업은 "우리같은 중소기업에게는 평상시 기업의 사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동반자적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지방은행의 존재가 절실한데 도내에는 충북은행이 없어진 이후 이같은 관계적 금융(relationship banking)을 형성할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며 "시중은행들은 여신 기준 등에 있어서 지방은행과는 다른 잣대를 갖고 있어 접근하는데 큰 벽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함정호 한국은행 충북본부장은 "조흥은행과 충북·강원은행간 합병의 정신은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은행을 살리는 대신 지방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하라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분명 정부가 의도했던 취지였다"며 "그런데도 모두들 이같은 기본 원칙과 정신을 망각한 채 본점이전 문제에만 몰두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함 본부장은 사견을 전제로 "충북으로선 당초 약속대로 조흥은행이 지역에서의 지방은행 역할을 이행토록 촉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며 "충북은행을 잃어버린 충북으로선 형식적인 본점의 이전문제도 중요할 지 모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전지역의 충청하나은행과 같은 실질적인 제2의 지방은행을 갖는 일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대전의 충청하나은행은 퇴출된 충청은행을 자산부채 인수방식으로 흡수한 하나은행이 별도법인으로 존치시키고 있는 조직으로, 시중은행인 하나은행과는 달리 대전·충남지역의 지방은행으로 기능하도록 인사 조직 영업부문 등을 완전 독립시킨 사실상의 충청은행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본보 2001년 9월 17일자 제197호 42-43쪽) 명목상 충청은행은 없어졌지만 실은 충청하나은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조흥은행과 '합병'한 충북은행은 조흥은행 충북본부 체제로 바뀌었지만 사실상 형해도 없이 사라졌다. 일정규모 이상의 여신은 본점의 철저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데다 인사와 조직에서 독립성이 전혀 없는 등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충청하나은행과 같은 제2의 '충북조흥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OU에 어떤 내용있나 엄연히 구속력있는 약속
BIS비율 등 필수이행사항과 본점이전 등 기타이행사항으로 구성

조흥은행은 사실 경제논리로 살아난 게 아니다. 국민의 호주머니 돈으로 조성한 천문학적 '공적자금'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게 '시장의 패배자' 조흥은행이다. 그 대가로 은행은 본점을 지방으로 옮겨 사실상 지역은행의 역할을 하겠다고 정부에 약속했고, 이를 문서화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니까 은행측은 본점의 실질적 지방이전은 곤란하다고 딴 말이다.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운위하는 경제논리대로라면 은행은 지금 존재하지 말아야 했다.
조흥은행과 정부가 체결한 MOU는 '필수이행사항'과 '기타세부이행계획'으로 내용이 대별되는데 필수이행사항은 정부가 제시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필수이행사항에는 BIS(은행의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부문 목표와 인원감축 점포축소 부동산매각 등 비재무 부문의 경영정상화 계획으로 나뉜다. 그리고 기타 세부이행계획에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본점이전 문제 등이 포함돼 있다. MOU는 분명 구속력을 갖는다. 그런 만큼 결국 기타 세부이행계획안에 대해서도 정부가 판단을 내려서 조치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최근 불거지는 본점의 지방이전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하는 데에는 은행의 책임도 있지만 정부의 정책일관성 결여랄까, 원칙의 부재가 낳은 소산이라는 지적이 높다.
/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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