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광고 탄압의 궁극적 목표는 ‘비판언론 죽이기’ 2002-10-17

청주지검의 무차별한 광고주 소환, 초유의 사건
“아무리 지방이지만 이럴 수 있나” 비난 고조

지방검찰이 지방언론을 다룰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확실한 소재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광고’다. 언론사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반강제적으로 뜯어 내는 광고, 이른바 강매광고는 언론사의 대표적 비리사례이고 이는 곧 언론을 경계하는 검찰에 만만한 호재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자들의 광고개입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기사화를 협박하며 광고를 취득하는 행위나 굳이 기사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자신분을 이용해 광고를 강요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기사 작성이 본업인 언론사 기자가 광고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종종 시문지면을 장식하는 사이비 언론인의 비리는 대개 이런 유형이거나 아니면 금품갈취다. 충북에서도 기자들의 광고강매는 이미 여러차례 문제가 됐다.
청주지검이 충청리뷰의 광고주에 대한 무차별적인 조사를 벌이는 배경엔 바로 이러한 광고강매 행위를 찾아 내 처벌하려는 저의가 다분하다. 특정 사안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광고주들을 닥치는대로 불러 놓고 뒤를 캐겠다는 발상은 일단 한 건이라도 잡아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충청리뷰 광고주에 대한 청주지검의 융단폭격식 조사는 한국 언론사상 전례가 없다. 모 중앙일간지의 청주 주재기자는 “기획수사에서 반드시 전리품을 내야 하는 검찰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언론사 광고주를 압박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박정희의 유신체제에서 자행된 동아일보 광고탄압이라는 상징적 사례가 있지만 그래도 그 때는 광고주에 대한 단순한 물리적 억압에 불과했다. 이번처럼 특정 언론사에 대한 비리수집을 전제로 광고주 전체를 까집는 처사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지방의 일개 주간지와 관련된 사안이지만 심각한 문제다. 만약 이런 일이 지방이 아닌 중앙에서 일어났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어디 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갈수록 세련되는(?) 광고수주

언론사 광고와 관련, 검찰 등 사정기관의 타겟은 주로 방송보다는 신문에 집중됐다. 기본적으로 80년대 말 언론자유화 이후 각 지역마다 신문사가 난립하면서 출혈경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신문사 부실운영으로 나타난데 따른 것이다. 신문사 수입구조에서 광고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렇다보니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광고 수주가 신문사의 지상과제였고 이 때문에 야기된 부작용이 엄청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자들이 본의 아니게 회사 경영방침에 따라 광고수주에 내 몰리는 현상이다. 이는 90년대에 걸쳐 가장 심했다. 당연히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사이비 기자가 가장 많이 양산된 시점도 바로 이 때다.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한 지역 언론인은 “기자의 능력은 광고를 얼마나 수주했느냐에 좌우됐다. 충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사는 뒷전이고 광고가 우선이었다. 어느 땐 신문사 편집국의 데스크 회의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광고 얘기였다. 어느 부서가 됐든 광고를 잘하는 기자가 유능한 직원으로 평가됐고 그 당사자는 회사 창립기념 행사 때 승진과 함께 포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광고 스트레스는 본사 경제부와 시.군 주재기자들한테 특히 심했다. 주재 기자의 경우 광고실적이 시원치 않으면 인사조치까지 당하기 일쑤였다. 기자들의 광고개입은 처음 이런 식으로 만연되다가 90년대 후반기부턴 양상이 달라졌다. 이런 일탈에 대해 사회적 견제가 심해지자 기자들의 광고개입도 좀더 세련(?)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광고를 아예 기사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다든가 혹은 기사 자체를 광고와 결부시키는 사례가 급증했다. 지금도 이런 행태는 비일비재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섹션’이라 불리는 특집판이다. 별도 인쇄로 연예 부동산 증권 레저 등 특집판이 편집되면 대개 하단의 광고란은 관련 산업 및 업종의 광고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통상 ‘전략적 거래’로 부른다.

전면광고보다는
1단 기사가 효과 커

신문사 기자들이 가장 도덕적 자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자신의 기사를 광고와 결부시킬 때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 및 현상에 대해 일종의 홍보성 기사를 써 주고 이에 상응하는 광고를 수주하는 것이다. 이 때는 별도 광고문안이 없고 기사 자체가 광고로 대체된다. 현재 중앙. 지방지 할것없이 전국의 신문매체들이 기획 광고로 가장 선호하는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누이좋고 매부좋기로는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의 부동산 거부 트럼프가 말한 개똥(!) 광고학, 즉 “전면 광고보다는 1단짜리 기사가 광고효과는 더 크다”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기사를 통한 광고는 업체가 가장 선호한다. 막상 기사가 어려우면 기사를 모방한 유사 기사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간혹 신문지상에 기자의 실명이 생략된채 나타나는 전면기사가 바로 이런 것이다.
광고의 기법이 아무리 세련되다 해도 결국 기자의 광고 수주는 정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기자가 특정 업체에 광고를 부탁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광고주가 부담감이나 위협감을 받았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사실(대개 비리나 모순점)을 기사화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며 광고를 유도했다면 이는 똑 떨어지는 공갈. 협박에 해당된다. 사이비 기자의 전형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때 광고주의 심리상태는 통상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대별된다. 이와 관련 검찰이 즐겨 사용하는 말은 대개 외포(畏怖)다. 기자의 광고청탁을 안 들어 줬을 경우 그 후환(?)이 걱정돼 어쩔 수 없이 응할 때가 이에 해당된다. 어떤 광고도 당사자인 광고주가 이런 심리상태를 가졌다면 바로 문제가 된다. 광고와 관련된 사이비 언론행위를 감시하는 검찰이 가장 중시하는 잣대다. 청주지검이 충청리뷰의 광고주를 소환,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는 저의는 다름아닌 이런 혐의를 찾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더라도 특정 혐의점을 찾지 못한채 토끼몰이 하듯 마구잡이식으로 광고주를 추궁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얼굴장사 광고는
통용되는 게 현실

똑같은 광고라도 중앙지와 지방지 사이엔 차이점이 크다. 업체의 입장에서 홍보효과를 감안한다면 지방지는 중앙지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하다. 때문에지방지의 광고는 업체의 자발적 의사보다는 친분관계에 의한 선의적(善意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다. 다시 말해 홍보효과가 전제되기 보다는 서로 아는 관계를 통해 광고수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광고업계에선 이런 관행을 ‘얼굴장사’라고 통칭한다. 만약 서로 안면이 있고 또 친분관계라면 광고청탁을 받더라도 결코 외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언론사 기자가 신분을 이용해 광고를 청탁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지만 이런 개인적 친분에 의한 광고수주는 통용되는 게 현실이다. 마치 조카가 사업을 하는 집안 아저씨한테 광고를 청탁하는 경우와 같다. 기자들이 광고에 내몰리는 지금의 현상은 바로 이런 것에 기인한다. 평소 출입처에서 혹은 취재과정에서 만나 각별한 관계를 트는 인지상정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전 총리서리를 지낸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총리임명 무산 후 “앞으로 기자들이 광고에 나서는 것을 금지시키겠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청문회에서 자사 기자들의 전략적 광고수주 때문에 비판을 받은데 따른 대응이었다. 그만큼 기자들의 광고개입은 민감한 사안이지만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요령껏(?) 행해지는게 현실이다.
청주지검이 충청리뷰 광고주에 대해 벌이는 대대적인 조사는 광고탄압의 정도를 넘어 언론죽이기의 차원으로 진행됐다. 검찰의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예정된 광고도 취소 내지 유보됐는가 하면 새로운 광고의 개척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실제로 이번 호의 광고는 정규판이 하나도 없고 모두 독자들의 격려광고로 채워졌다. 신문사 운영에 있어 광고수입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일간지들의 수입구조는 대개 광고 60~70% 대 판매 40~30%로 나타나지만 지사 지국을 운영할 수 없는 리뷰같은 주간지는 수입의 80%를 광고가 차지한다. 결국 청주지검이 행한 일련의 처사는 충청리뷰의 문을 닫게 하겠다는 의도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되돌아 보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언론 길들이기…, 처음으로 항의 백지광고 선보여

40대 이상 세대에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동아일보 광고탄압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는 3선 개헌에 이어 유신체제를 확실히 구축한 박정희정권이 언론통제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이에 일선 기자들을 중심으로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조심스럽게 퍼져 나갔고, 급기야 74년 10월 1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명이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배제한다”는 이른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결의한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철저하게 금기시돼 온 유신반대시위와 집회기사를 싣기 시작한 것이 광고탄압의 발단이었다.
유신정권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동아일보 광고탄압은 74년 12월 16일부터 75년 7월 16일까지 무려 7개월 동안 지속됐다. 당시 광고탄압은 정권 채널의 공권력이 주로 대기업체인 동아일보 광고주들한테 모종의 압력을 행사하는 형식으로 취해졌는데, 결국 광고주들은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한채 무더기로 광고를 해약 내지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광고주의 입장에선 정권의 압력을 배겨날 수 없었다. 청주지검이 충청리뷰 광고주들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시작한 후 모든 광고가 뚝 끊긴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동아일보 광고주엔 물리적인 압력이 노골적으로 가해졌다면 충청리뷰 광고주엔 조사를 빗댄 심리적인 압박이 가해진 것이다.
광고탄압으로 10여일 동안 어려움을 겪던 동아일보 직원들은 정권에 대한 항의표시로 백지광고와 격려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신문의 유사 이래 처음인 백지광고는 유신독재체제의 언론탄압 정책에 대한 항거를 뜻하는 것으로 향후 민주화운동에 동인(動因)을 더욱 부여했다.
특히 그해 12월 말쯤 ‘민주시민의 광고를 부탁한다’는 동아일보 신문광고로 촉발된 일반 시민들의 격려광고는 한국 언론사에 ‘시민광고’라는 색다른 이정표를 남겼다. 당시 용기있는 시민들이 전화번호를 적시한 격려광고를 실었다가 역시 정권 채널에 의해 일종의 취조를 당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동아일보의 광고탄압 사태는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던 기자 등 종사원들과 정권에 머리숙인 사주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당시 양측간의 갈등 와중에 한 관계자에 의해 제기된 이 말은 지금도 광고문제의 전범처럼 여겨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가능하고, 신문의 자유는 광고의 자유가 뒷받침돼야 한다’ .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는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회사측이 관련자 113명을 강제해직시키는 아픈 상처를 만들어 냈다. 이 때 해직된 송건호 등은 개혁적 인물을 결집시켜 한겨레 신문을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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