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규명되지 않는 10억원의 진실
제주 최대 뇌물사건에 쏠리는 관심 지대

도지사에겐 3억, 군수에겐 7억 제공설에 의문 커져
신라는 공사 중단후 민사소송으로 공사비 보존 나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신라개발 이준용회장의 4차 공판이 지난 6일 제주지법 제 2형사부(재판장 조한창 수석부장판사) 심리로 있었다. 이날 재판 역시 단일 사건만을 하루종일 다룸으로써 사안의 비중을 실감케 했다. 특히 4차 공판에선 뇌물 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우근민 전 제주지사가 사건의 조작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해 진실공방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이준용회장은 북제주군 세화송당온천지구 개발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했다가 지난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 전지사와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에게 모두 10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18일 제주지검에 의해 구속됐다.

충북에서 주택건설 사업으로 성공한 후 타지 진출까지 꾀해 지역 건설업계의 상징적 인물로 꼽혔던 이회장의 구속은 당장 지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주상공회의소와 건설협회 충북도회는 그동안 이회장이 건설인으로 기여한 공로를 들어 탄원서를 내는 등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아직까지 구속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된 재판에도 불구, 문제의 10억원에 대한 진실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돈이 두 사람에게 각각 3억원(우근민) 7억원(신철주)씩 뇌물로 건네졌다고 밝혔지만 이회장측은 공사에 따른 용역비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뇌물 제공의 배경에 대해선 향후 온천지구내 도로개설 등 SOC 구축에 대비, 이의 편의를 도모키 위해 용역비로 가장시켜 도지사와 군수에게 로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에서 제주지검 사상 최대 뇌물사건으로 기록될 정도로 이 사건에 쏠리는 관심 또한 지대하다. 그러나 타지에서 진행되는 사건인 관계로 충북 언론의 접근은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일반인들도 단순 뇌물사건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일각에선 이준용회장이 타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이회장은 시종일관 자신을 표적으로 한 악의적인 사건조작임을 강변했고, 우근민 전지사도 이러한 이회장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어 향후 진실공방의 전도가 더욱 흥미를 끌게 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7명이 구속되거나 불구속 기소됐다. 이준용회장과 온천개발 주체인 정모 조합장, 김모 이사, 그리고 우근민 전 제주지사 아들 등 4명이 구속되고 우 전지사,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 측근 강모씨, 용역회사 대표 이모씨 등 3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모두 뇌물을 주고 받거나 중간에서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우 전지사 아들은 제3자뇌물취득죄가 적용됐다. 문제의 세화송당온천지구는 총 72만평으로 토지주들이 도시개발사업조합을 결성해 신라개발을 시공사로 선정, 공사중이었고 (주)남광ENG가 용역회사로 참여했다. 결국 사업의 주체와 시공사, 용역회사 책임자 모두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특히 지역 방송사 간부가 연루됨으로써 현지에서 많은 얘기를 낳고 있다.

뇌물로 건네졌다는 10억원은 신라개발이 협력업체로부터 토지대금으로 받은 10억원짜리 자기앞수표 2장중 한 장으로, 이 수표는 추적결과 국민은행 양재동지점에서 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이회장측이 갖고 있다가 2002년 5월 24일 서울 사무실을 방문한 정조합장과 용역회사 대표 이씨에게 건넨 것이다.

이준용회장은 이에 대해 2차 공판에서 “2005년 5월 24일 사무실에 정조합장과 용역회사 이대표가 함께 왔었다. (여기서) 정조합장이 이번에 선거도 있고 해서 경비를 써야 한다며 10억원을 요구하길래 너무 터무니 없어 거절했다. 이후 이대표가 용역비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해 그럼 용역비로 쓰라며 수표로 10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관계자들의 진술에 의거, 이를 용역비가 아닌 뇌물로 보고 지난해 11월 18일 참고인 조사를 받던 이회장을 전격 구속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회장측 인사는 “이쪽에선 계속 용역비라고 했지만 검찰이 믿지 않았다. 이회장은 10억원을 용역비로 줬을 뿐 그 이후의 사용처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비록 용역비로 줬지만 뇌물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이회장이 그럴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게 구속의 결정적 빌미가 된 것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회장을 뺀 나머지 인사들은 처음부터 이 돈이 뇌물 목적으로 전해졌다고 말해 검찰의 혐의를 뒷받침했다. 검찰은 이 수표가 곧바로 용역회사 대표 이모씨를 통해 세탁된 후 뇌물로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의 결정적 근거는 물론 당사자들의 진술이다. 용역회사 대표 이모씨는 “2002년 5월 24일 정조합장이 자기앞수표 10억원을 가지고 와 급히 현찰이 필요하다고 말해 처음엔 거절했지만 나중에 회사 계좌를 통해 찾게 해서 줬다. 10억원의 사용처는 그 당시엔 몰랐다”고 진술했다. 또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사망)에게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 방송사 K국장은 “2002년 5월 신군수가 ‘돈을 받을 곳이 있는데 계좌번호를 적어 달라’고 해서 알려줬다. 이곳으로 2억원이 입금된 직후 5000만원은 신군수에게 직접 전달했고, 나머지 1억5000만원은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이준용회장은 모두 입을 맞춘 조작이라고 강변한다. 6일 4차 공판에서도 이회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용역비로 전달한 10억원이 뇌물로 사용된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나눠 쓴 후 문제가 되자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본인과 우 전 도지사 그리고 죽은 신군수에게 모든 것은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근민 전지사도 이날 오전 재판에서 “이 사건은 10억원의 용역비를 나눠 쓴 관련자들이 신철주 전 군수와 나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며 조작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준용회장으로부터 용역비 10억원을 받은 조합장과 용역회사대표, 그리고 모 언론사 국장이 10억원을 나눠 가진 후 그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작년 11월 초 언론사 K국장으로부터 온천지구 개발조합장이 구속됐고,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3년이기 때문에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말하라는 취지의 연락이 온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K국장에게 무슨 미친 소리냐며 면박을 준 적이 있다”며 검찰의 공소요지를 부인했다. 또한 “검찰에서 내가 3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하면 아들을 구속시키지 않겠다고 제의했었다”고 말해 재판정을 잠시 술렁이게 했다.

제주지역의 여론에 의하면 언론사 간부 K국장은 지역 언론계 마당발로 통하는 인물로, 이번 사건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증인 출석이 예정됐던 6일 재판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우근민 전지사는 지난 1월 27일 기자회견을 자청, K국장에 대해 “그가 거짓 진술을 하는 이유가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열쇠”라고 말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우근민 전 지사는 6일 재판에서 내내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아들의 손을 꼭 잡아 눈길을 끌었다. 우 전지사의 아들은 3억원이 아닌 500만원 수수 사실을 인정해 구속수감됐다. 그는 이 돈을 선거자금인줄 알고 받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뇌물로 전달됐다는 10억원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용처(?)가 밝혀진 돈은 이것 뿐이다. 나머지 9억9500만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뇌물을 준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중간에 전달한 사람만 있다”고 냉소적으로 표현하며 검찰에 구체적인 입증을 주문하기도 했다. 또한 재판부는 4차 공판에서 이준용회장과 조합장, 용역회사대표가 서로 공모해 뇌물사건을 저질렀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도 역시 검찰측에 공모사실에 대한 구체적 확인을 요구했다. 대단위 온천사업을 하면서 사업승인자인 도지사보다 군수에게 더 많은 뇌물을 줬다는 것도 많은 궁금증을 안긴다. 7억원을 받았다는 신철주군수는 사건이 본격 터지기 전인 2005년 6월 과로로 사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뇌물 사건이 전혀 다른 건으로 인해 불거졌다는 사실이다. 당초 검찰은 온천지구 사업주체인 도시개발 조합원이 조합장을 상대로 한 고소건을 수사하다가 용역회사 이대표의 계좌에서 한꺼번에 10억원이 인출된 것에 착안, 이를 추적하던 중 지금의 뇌물건까지로 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준용회장측은 “유탄을 맞았다”고 표현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문제의 사업과 관련, 용역비가 과다하게 책정된 점 등을 들어 이에 의혹을 갖고 조합 책임자를 고소하게 됐다는 것. 세화송당온천지구 개발사업의 전체 사업비는 976억원으로, 이중 140억원이 용역비로 책정돼 사실 용역비의 비중이 상식을 뛰어 넘는다.

이에 대해 신라측은 “용역계약 관계는 원칙적으로 조합 소관이기 때문에 전후과정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다만 이 정도의 사업에선 용역비가 50억원대 수준일 것이다”고 밝혔다. 신라개발은 지금까지 문제의 10억원을 포함, 모두 48억1000만원을 용역비로 전달했는데, 이의 회수를 위해 조합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6일 재판에서 상대 변호인은 조합원의 조합장 상대 고소건에 대해 “뇌물을 줬는데도 효과가 없자 이회장측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고소를 부추긴게 아니냐”고 맞불을 놨다.

이준용회장은 당초 조합측이 체비지(사업비 충당을 위해 사업기획에서 유보한 땅) 일괄 양도와 SOC 확보를 약속했는데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체비지 15만평은 현재 모 부동산신탁에 신탁된 상태다. 이번 뇌물사건과 관련해서도 이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10억원을 부당하게 횡령, 유용하고도 모두 입을 맞춰 나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라며 “자신은 철저히 속았다”도 주장했다.

북제주군 직원들, “군수님만이 아닌 우리의 명예문제”
제주 세화송당온천지구 뇌물 사건은 색다른 관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사건 연루자들은 뇌물로 사용했다는 10억원중 7억원이 평소 친분이 있는 언론사 간부 K씨를 통해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가족들이 발끈했고, 북군청 직원들도 법적 대응에 나설 태세다. 현지에선 북군청 직원들이 이미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자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북제주군 관계자는 “돌아 가신 군수님의 명예는 곧 그 분을 모셨던 우리 직원들의 명예와도 직결된다. 군수님은 재임 당시 공직자의 사표였는데 이런 식으로 매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직 변호사 선임까지는 안 가고 준비중이다. 고문 변호사를 통해선 이미 채록 등 관련 자료를 주의깊게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지 여론을 들은 결과 신철주 전 군수에 대한 평가는 무척 호의적이다. 청렴강직하기가 남다랐기 때문에 그런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결코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신 전군수는 이른바 고졸 신화를 이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림공고를 나온 그는 제주도청에서 내무국장 등 고위직을 거쳐 3번이나 민선 자치단체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지금까지 민선 1, 2, 3기 자치단체장에 모두 당선돼 과거 관선 때 경력을 합치면 무려 4번이나 군수직을 역임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그만큼 그 분은 인품을 인정받았다. 7억원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그 돈의 실체에 대해선 드러난 게 하나도 없다. 전달자 역할을 했다는 사람들의 진술도 왔다갔다 엇갈린다. 분명히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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