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전국 공립고 이제는 입시 명문 아니다
80년 역사 청주고, 개교 이래 첫 서울대 ‘제로’

벽지 농촌학교, 농어촌특별전형으로 명문대 물꼬
전통적으로 근현대사회를 주름잡았던 한국사회의 학맥에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KS는 경기고-서울대’, ‘TK하면 대구-경북고’ 하는 식으로 지역과 학벌을 연결시키던 엘리트 의식에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전국적인 명문고들의 추락은 사실 오래 전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1974년 서울, 부산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일반계 고교의 50% 이상에서 시행되고 있는 ‘고교평준화’로 인해 주요 도시의 명문고들이 학생 선발에서부터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995년부터 ‘지원 후 추첨제’로 학생 모집 방식이 전환되면서 이를 미리 준비해 온 일부 사립고들에게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청사진을 미리 갖추지 못한 전통의 명문고들은 뒤늦게 현실점검이 됐다하더라도 이미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실 서울의 유수 공·사립고와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들이 한국사회에 형성한 엘리트 학맥은 대부분 서울대와 연결된 것이었다. 청주지역의 경우에도 고교 평준화 이전에 청주고를 제외한 여타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진학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평준화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다.

1980년대 들어 청주지역의 사립고에서 서울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전략적으로 비인기 학과를 공략한 것이어서 오히려 폐해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확연히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농어촌특별전형 등 소외 지역을 안배하는 입시전형까지 실시되면서 군지역에서도 서울대 합격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충북의 명문으로 손꼽혀왔던 청주고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자를 내지 못해 동문 등 청주고 관계자들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합격순위 20’에서 전통 명문 실종
200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발표에서 일반계 고교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합격자를 낸 청주 세광고와 서울 영동고, 경기도 안산 동산고는 모두 사립학교다. 특히 동산고는 1994년에 설립됐고 영동고도 30년 남짓의 역사를 지닌데 불과하다.

2005년 입시를 기준으로 조사된 ‘서울대 합격순위 베스트 20’을 살펴보더라도 사립고, 특히 신생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물론 서울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한 고교 가운데 상당수는 예술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교들이다.

베스트 20 가운데 이같은 특목고를 빼면 10개 학교가 남는데 이 가운데 국·공립은 34명을 배출한 경기고(5위)와 19명을 배출한 대전 유성고(16위) 등 2개교에 불과하다.
2004년에도 31명을 배출해 8위를 기록했던 경기고는 2006년에 10명 남짓한 합격자를 내는데 그쳐 순위 밖으로 밀렸다. 2006년 입시에서 이른바 전통 명문으로 알려진 학교 가운데 2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학교는 공·사립을 통틀어 100년 역사의 휘문고(사립)가 유일했다.

그렇다면 입시에서 있어서 명문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흥 명문은 어떤 학교들일까? 물론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비평준화지역이 있어 ‘선발’로 학생을 뽑는 학교들이 있지만 이들 학교들이 속한 지역이 대부분 중소도시이다 보니 파괴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에 반해 올해 두각을 나타낸 서울 영동고, 경기 안산 동산고, 청주 세광고를 비롯해 공주 한일고 등은 사립학교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우’에 해당된다. 다만 동산고는 비평준화 고교 즉 선발고에 해당된다.
일반 사립고와 함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입시강자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고 교과과정과 학생선발, 교사선발 등을 간섭받지 않는 자립형 사립고들이다. 자립형 사립고 가운데 주목을 받고 있는 학교는 전북 전주 상산고, 경북 포항제철고 등이다.
세광고 한빛학사 김선진 사감은 “충북지역 상위 그룹 가운데 일부가 자립형 사립고를 찾아 지역을 떠났지만 큰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지역인재들이 지역 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합격자 벽지 농촌학교서도 속출
명문고들은 그야말로 속터지는 상황이지만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학교는 이제 도시지역을 벗어나 벽지 농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충북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일반계고(특목고 포함) 49개, 실업계고 30개교 등 도내 79개 고등학교 가운데 최근 3년 동안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는 32개교에 이른다. 전체적으로는 50% 미만이지만 실업계를 뺀 일반계 49개교를 기준으로 하면 17개교(35%)만 서울대 합격자를 내지 못했다.

2006학년도 서울대 입시 결과 도내 군지역에서는 단양고가 2명의 합격자를 냈으며 영동고, 괴산고가 각각 1명의 합격자를 냈다. 개교 35년만에 수시모집에서 경영학과, 정시모집에서 간호학과 등 동시에 2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낸 단양고는 갑작스럽게 농촌지역의 명문고로 급부상했다. 괴산고도 무려 18년만에 서울대 합격자를 내면서 잔치분위기다.

비록 올해 합격자는 없지만 매괴여자상업고등학교에 일반계고로 전환한 음성 매괴고를 비롯해 옥천고, 중산외고, 세명고 등도 최근 3년 안에 서울대 합격 신고식을 치렀다. 이밖에 올해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한 청주 서원고, 흥덕고, 주성고도 나란히 1명씩을 서울대에 보냈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지역에서 고르게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서울대 입학정원이 2005년 3327명에서 올해 3225명으로 100여명 정도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북지역 합격자는 85명에서 99명으로 늘어나는 괄목할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입학정원에서 차지하는 충북지역 합격자의 비율도 2005년 2.61%에서 2006년 3.07%로 크게 올랐다.

충청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농어촌특별전형의 대상지역이 군단위 읍·면 소재 고등학교에서 지방 일부 시지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농촌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주고 충격 속 원인분석 골몰
8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2006년도 서울대 입시에서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배출하지 못한 청주고는 한마디로 충격 속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교입시 평준화와 변화하는 대학입시제도 등 달라진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예술고를 제외한 청주지역 일반계고들이 올해 모두 서울대 합격자를 낸 상황에서 청주고의 부진이 유독 두드러지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평준화 이전에 입시를 치른 청주고 동문들은 ‘뺑뺑이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학력이 저하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개교 이래 내려온 전통이 무너진 것에 대해 허탈해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서울대 입시에 있어서 청주고 몰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당국과 교사들의 열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립 중등교원들의 경우 진학지도 등에 부담이 큰 고등학교 보다 중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 고등학교 근무를 희망하는 교사에게 2005년부터 0.005점의 가산점까지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공립고교가 공통으로 겪고있는 어려움으로 청주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청주고를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행의 고교입시제도가 ‘지원 후 추첨제’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주고의 경우 유독 경쟁률이 높다 보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아예 지원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주지역 일반계고교의 경쟁률이 3대 1을 밑도는데 반해 청주고의 경우에는 15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왔다.
학생들이 1·2지망에서 전통의 명문고인 청주고를 선호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학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아직까지는 학맥에 따라 밀어주고 끌어주는 현상이 남아있다는 것.

이같은 명문고 기대감은 도시지역 보다 농촌지역이 더 강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2006년도 청주고 신입생 438명 가운데 농촌지역 학생이 112명에 달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공무원 A씨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인사철만 되면 출신 고등학교가 거론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실제로 공무원 조직만큼 고교동문회가 활성화된 직장 조직도 드물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A씨는 또 “공무원과 업자 사이라도 학연으로 얽히면 ‘형님’으로 모든 것이 통하는 현실 속에서 부정부패나 독주가 싹 틀 가능성이 높다”며 “고교평준화를 통해 인재가 골고루 배출되고 상호 발전적인 경쟁관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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