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法禍)…그 깊은 상처. 법 만능, 구속이 능사인가 2002-09-13

‘불구속 수사’ 및 ‘무죄’ ‘추정원칙’은 교과서에나
수사기관, 구속수사 경쟁 - 구조적 구속자양산
인신의 구속은 사람이 평생 쌓아온 명예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가족과 친척, 친지 등과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경제적인 활동 및 사업 관계에 최악의 영향을 미침은 물론 치명적인 불이익을 준다. 그야말로 인신의 자유는 모든 인권의 근본이며, 개인의 인격실현과 행복 추구의 전제조건이다.
우리 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무죄추정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법전에나 올라있는 지켜지지 않는 원칙으로 팽개쳐진 채 인신 구속이 남발되고 있다.
특히 돈 있고 힘있는 자에게 너그러운 법의 잣대가 힘없고 돈 없는 자에게는 예리하게 적용됨으로써 실제 국민들이 느끼는 법 감정은 최악이다.
과연 인신구속이 능사인지 그 실태를 점검해봤다.<편집자주>
99년 경찰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구속자 수는 형법 피의자 7만3186명과 특별법 피의자 3만620명 등 모두 10만3800여명에 달한다. 웬만한 중소도시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이는 선진국의 6배이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인구 10만명당 300여명이 구속되는 구속 왕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도소는 수감자로 넘쳐나 서너평 짜리 감방에 12-14명을 수용하는 후진국형 교정 행정을 낳고 있다. 지난달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나온 K씨는 “3-4평 감방에 14명이 수용됨으로써 30도를 웃도는 여름날씨에 발조차 제대로 뻗고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교도소가 수감자로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징벌은 국가와 사회 유지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죄형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일단 처벌성 인신구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열사람의 범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선진 인권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구조적인 구속자 양산

수사기관에 의한 인신구속의 양산은 구속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수사 기관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국민들은 구속은 곧 처벌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믿고 있다. 때문에 수사기관은 국민들의 법 감정을 결코 간과하지 못하고 구속 수사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충북지방경찰청 수사관계자의 경험담은 보다 사실적이다. “범죄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서 하는 말은 ‘구속시켜 주세요’다. 구속이 곧 처벌이라고 믿는 것이다. 불구속을 하게되면 ‘수사가 불성실하다거나 무슨 뒷거래가 있는 양 쳐다보는 것이 일반적인 법 감정이다. 어떤 피의자를 수사하여 검찰에 송치할 때 ‘불구속’의견을 내면 검찰도 일단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당연히 구속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하게 된다.”
이 보다 구속수사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수사기관과 수사 형사들에게 주어지는 고과 점수. 더 많은 사람을 구속 시켜야 일 잘하는 형사 및 조사관으로 인정받게 되고 승진에도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구속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게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형사가 어떻게 불구속 사건 수사를 하느냐며 불구속 수사는 아예 하 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던 때도 있었다”는 것이 한 고참 형사의 말이다. 경찰서별 경쟁도 구속자 양산에 한 몫 한다. 경찰서별 실적 경쟁에서 무엇보다 검거율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만 구속자를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사건을 많이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수사기관과 수사관들의 경쟁구도는 수사관들에게 한 번 물리면 구속 시켜야 한다는 수사 의지(?)를 갖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똘똘말아 구속 영장을 청구케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한 수사관은 “형사 개인별, 경찰서 기관별 실적 경쟁이 인신 구속 양산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소년 범죄 사건의 경우 구속에 따른 고과 점수를 배제시킨 것도 이런 경쟁 분위기 때문에 청소년들에 대한 구속 수사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청소년, 실적쌓기 희생양(?)

청소년 범죄가 날로 늘어가면서 법에 의해 처벌받는 청소년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소년 범죄자는 지난 91년 8만5000명에서 93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2000년 14만3000명으로 9년만에 70%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이혼 등 가정불화, 가정·학교 교육의 미흡으로 우범 청소년의 양산과 유흥업소 증가 등 청소년 유해 환경의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데 있어서 훈육과 사회적 선도가 점차 사라지고 법에 의한 처벌이 보편화되어 가면서 수사 형사의 실적쌓기의 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때 충북지방경찰청은 조폭 검거 1위를 차지했다. 이와관련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경찰관은 “지역이 작은 충북경찰청이 어떻게 조폭 검거 1위를 할 수 있었겠는가. 계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학원내 불량 써클 수준으로 조폭 흉내를 내는 어린 학생들이 검거 실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2000만원을 사기친 사기 피의자는 불구속되지만 이들 청소년들이 많이 포함되는 ‘무전취식’과 같은 범죄는 ‘갈취’라는 이름이 씌워져 구속으로 연결되고 조직폭력 계보와 연결되어 있다면 정성을 들인 수사로 ‘조직폭력배 검거’로 포장된다”고 털어놓는다.
/ 민경명 기자

주병덕씨의 법정구속을 보는 시각
주병덕 전 충북도지사가 지난 7월 31일 청주지법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현재 대전 교도소로 이감되어 항소심을 받고 있는 상황.
주 전지사에 대한 법정구속은 뜻밖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며 여러 반응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고령으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건강상태를 감안해 볼 때 1심에서의 법정구속은 너무 혹독한 판결이라는 평이 주류. 워낙 거구인데다 건강마저 악화, 법정에 출두하는데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거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켜보았을 재판부가 정상 참작 없이 법에 따라 구속 판결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적어도 변종석 전 청원군수 사례와 같이 항소심을 자유로이 불구속 상태에서 받을 수 있게 하는 징역형을 선고하되 법정 구속은 하지 않고 차선책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찰 치안정감과 감사위원, 그리고 도지사까지 역임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뇌물 수수 혐의를 두고 진행되는 재판에서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것이 법정 구속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을 것이란 점에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주 전지사의 한 측근은 주 전지사의 뇌물수수 기소와 재판에 대해 “주 전지사가 오랜 경찰 생활을 하는 동안 있었을 지도 모를 ‘해코지’에 대한 반대 세력의 보복일 수 있다”는 색다른 분석을 내놨다.
평소 눈물이 많은 주 전지사는 구속 수감이후 열린 항소심 법정에서도 펑펑 울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한다.
무리한 인신구속 막을장치 있으면 뭐하나 '효력별반' 2002-09-19

오히려 구속수사·재판원칙, '일단 구속시켜놓고 보자'

청주, 영장 발부율 평균 상회

본보 지난호(9월14일자 246호)에 게재된 ‘무분별한 인신구속’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많은 독자들과 피해자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분명히 불구속수사와 무죄추정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구속 수사 및 재판이 일상화되어 있어 ‘구속 왕국’을 실감케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하소연은 무엇보다 재판 제도와 법조인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높아만 간다는 사실이다. 가장 뿌리깊은 불신은 제도와 법에 따라 이루어지기 보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돈없고 빽없는 약자만 당하게 된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조에 대한 회의감이다.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 한국민족정신연합회 사무실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법조 피해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사무실은 종교 단체 사무실이지만 지난해부터 이 연합회 김옥순총재가 공권력의 남용으로 피해를 본 법조 피해자들의 단체인 ‘전국 공권력 피해자 연맹’의 청주 모임을 이끌면서 소문을 듣고 피해자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때문이다.
전국 공권력피해자 연맹은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그 어디에 제대로 호소할 곳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만큼 시민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법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저 정의가 세워질 줄 굳게 믿고 법에 호소했다가 돈과 시간만을 잃고 낭패를 봤다는 피해자를 비롯하여 억울하게 구속되었지만 풀려 나오는데 급급하여 변호사에게 선임료만 주고 무죄를 다퉈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등 다양하다.

“재수없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니

이중에는 변호사의 성의 없는 변론 등 의뢰인에 대한 불성실 서비스에 불만이 가장 높았다. 한 참석자는 “변호사가 처음에는 무죄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일단 구속되고 나자 ‘재수없어 당한 일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일단 나가서 싸우자’는 식으로 종용하고 나섰다. 막상 재판에 들어가자 피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기보다 판사의 눈치를 살피며 판사에게 거스르지 않는 재판 진행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역력했다”며 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옥순씨는 “모 변호사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느 한 피의자로부터 무죄를 입증시켜 주겠다며 선임료로 330만원을 받아갔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변론을 못하겠다고 했고 피의자는 선임료를 돌려 받으려 했지만 200만원 밖에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빼앗겨 10여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이모씨는 “농지 거래 증명을 위한 서명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상대방이 위증죄로 처벌까지 받았는데 그 거래의 원인 무효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여기에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구속에 따른 사회적 처벌로 인해 돌이킬수 없는 죄인이 된 채 아무런 보상을 되돌려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청주지법 영장 발부율 전국 평균 상회

한편 인권(人權) 정부를 자처해온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형사 피의자 피고인에 대한 인신 구속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국회 국정 감사자료로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997년 82.2%에 머물렀던 구속영장 발부율이 98년 85.8%, 99년 86.4%, 2000년 86.7%, 2001년 87.4%로 현정부 들어서 해마다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청주지법의 경우는 구속영장 발부율이 지난해 88.1%에 달해 전국 평균 보다 0.7% 포인트 높았다.
반면 보석허가율은 96년(58.6%)을 정점으로 97년 55.2%, 98년 51.9%, 99년 50.8%, 2000년 50.6% 등으로 떨어지다가 급기야 지난해에는 50%벽이 깨지면서 49.9%까지 주저앉았다.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어느정도 지켜지는지를 가늠해 볼수 있는 체포·구속적부심 석방률도 97년 48.3%에서 98년 44.3%, 99년 43.3%, 2000년 44.2%, 2001년 42.5% 등으로 꾸준히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이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의해 부당한 인신구속으로부터 보호받을수 있는 영장실질심사, 체포·구속적부심, 보석 등을 통한 인권 보호 장치들도 일단 구속시켜 놓고 보자는 수사·재판 편의주의에 의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법조 주변에서는 구속을 면하는데 1000만원이라는 돈거래의 검은 소문들이 무성한 실정이다.
/ 민경명 기자

“바쁜 업무에 쫓겨 무죄 판결 쓰기를 꺼려하는 판사,
구속을 도구로 수사에 임하는 검찰,
적당히 타협해 돈만 벌려는 변호사”
변호사가 ‘억울한 죄인’ 양산 법조 현실 비판 소설

구속재판제도의 문제점과 변호사의 불성실한 변론 등에 대한 법조 불신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가 쓴 법정소설 『그림자 새』가 세간에 화제다. 전직 판사로서 법조계의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인해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내는 법조현실을 통렬히 비판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다.
작가 임판 변호사는 93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5년여간의 판사직을 그만두고 인천에서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임변호사는 책의 서문에서 “주인공이 있는 개인적인 드라마이긴 하지만 소재가 법정 드라마이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판사와 변호사를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재판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그런 제도의 크나큰 수혜자였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음에 틀림없지만 누구라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런 부끄러움을 덮어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소설에서 변호사를 ‘고용된 총잡이’ ‘용병’ ‘장돌뱅이’ 등으로 부른다. “다른 변호사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하면서도 변호사의 공익적인 역할은 이상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한 신문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법조 현실 비판은 ‘법화’(法禍)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관통하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바쁜 업무에 쫓겨 무죄 판결 쓰기를 꺼려하는 판사, 구속을 도구로 수사에 임하는 검찰, 적당히 타협해 돈만 벌면 된다며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으려는 변호사 등등. 이런 불완전한 시스템이 소설에서처럼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테마인 강간 사건도 실제로 그가 판사 시절 무죄를 선고한 피고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인 법조인이 되었지만 이혼의 아픔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김변호사가 억울하게 구속된 세 소년의 변론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자신과 인생의 의미를 이해해 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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