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그렇긴 하지만 올 가을도 전세계의 이목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와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쏠렸습니다. 노벨상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각분야별 수상자가 발표 될 때마다 세계가 탄성을 자아내면서 그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평화상 수상자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선정되었다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밝혔습니다.
카터씨는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민주주의 및 인권신장, 경제 사회적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이 인정돼 평화상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알다시피 그는 대통령 재임 때는 인기가 없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혔었지만 퇴임 뒤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헌신적 활동으로 큰 영예를 안은 것입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노벨상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 권위의 상입니다. 그런 만큼 상이 발표되면 화제도 만발합니다. 올 수상자 가운데 백미(白眉)라면 단연 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라고 하겠습니다. 박사도 아니 요, 교수도 아니 요, 대학졸업이 전부인 회사의 무명 연구원에 불과한 그가 수상자로 선정되자 지금 일본열도는 흥분과 경이로 들끓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은 때로 의외의 사실에 놀라 감동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합니다. 카터나 다나카나 두 사람 모두 ‘인간승리’의 본보기를 세계에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에서는 지금 엉뚱한 노벨상시비로 정국이 끓고 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타도록 하기 위해 외국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펼쳐야 한다는 한 개인의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노벨상 자진반납’운운하며 목청을 높여 예의 정치공세를 퍼부어 대고 청와대는 ‘해도 너무 한다’며 ‘어이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노벨상을 놓고 정치인들이 그것을 정쟁으로 삼아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듣기 거북하고 낯이 뜨겁습니다.
노벨상은 누구의 로비에 의해 수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은 그 권위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단, 상을 받기 위해 후보자의 업적을 알리는 정당한 홍보활동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문제될 일도 아닙니다. 실제 그러한 노력은 누구나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확실한 근거도 없이 마치 사실이 그러한 듯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 폭언 을 하는 것은 노벨상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임은 물론 노벨상위원회의 명예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요, 도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언행은 김대통령 개인을 떠나 국가적 망신이요, 수치입니다. 도대체 노벨상을 흠집 내서 누가 득을 볼 것이며 무슨 속이 그리 시원하겠습니까. 누워 침 뱉으면 그것이 누구의 얼굴에 떨어집니까.
이성을 잃어선 안 됩니다. 특히 나라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들이 상식을 벗어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때 그 사회, 그 나라의 장래는 자명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혼돈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로 정치인들의 그와 같은 무책임한 경거망동에서 온 것이 아닙니까.
뒷돈을 써서 올림픽을 유치하고, 뇌물을 주고 국제기구의 감투를 얻어 쓴다고 해서 노벨상마저 돈주고 산다는 그런 망상은 글쎄,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지. 결국 돈이면 다 된다는 그릇된 우리사회, 황금만능사고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 우리 리뷰 기자들은 철야농상으로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며 몇일째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문화계, 종교계 및 시민들의 동조 농성과 성원이 눈물겹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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