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들의 수난시대
상태바
골초들의 수난시대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6.02.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글자로는 ‘금연’이란 두 글자다. 이 두 자를 볼 때는 무슨 송충이나 독사를 보는 것같이 소름이 끼친다. 이 두자가 멋없이 걸리기를 좋아하는 버스나 극장은 그래서 도무지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다”

애연가로 소문난 오상순(吳相淳)은 애연소서(愛煙小敍)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얼마나 담배를 좋아하면 호까지 숫제 공초(空超)라고 불리었을까. 그는 목욕탕에 들어갈 때도 서너 개피의 담배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의하면 담배는 광해군 말년부터 성행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남쪽에 있는 담파국(湛巴國)에서 전래되어 ‘담파’를 거쳐 담배로 불리었다는 것이다. 또 일설에는 타바코-타바-담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전래된 담배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아 심지어는 궁궐에서조차 피워댔다. “한번은 궁중에 숙직하는 문신들이 서로 모여 흡연할 때 상감께서 거니시다가 우연히 이들 흡연당(吸煙黨)을 발견하시고 구불미(口不美)라는 말씀이 계셨으므로 이후부터 존전에서 감히 흡연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다” (문일평, 호암전집)

춘향전에는 담배타령이 등장한다. “한참 이러할제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먹세, 갈 멍덕을 숙여 쓰고 두던에 나오더니/ 곱돌로 만든 담뱃대를 넌즛 들어 꽁무니 더듬어서/ 가죽 쌈지 빼어들고 담배에 새우침과 같은 침을 뱉아/ 엄지손가락이 자빠라지게 비빗비빗 단단히 털어 넣고...농사꾼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빽빽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겠다/ 양볼때기 오목오목 콧구멍이 발심발심하며 연기가 훌훌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이처럼 담배는 사대부는 물론이요, 농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을 받아온 기호품이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의 독수공방도, 농사일의 고달픔도 어루만져 주는 게 담배였다. 운보 김기창 화백도 애연가였다.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창작의 또 다른 에너지였다. 운향 미술관에는 그 파이프가 고즈넉이 놓여져 있다.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아내와 다투지 않으며(임어당, 생활의 발견) 여송연을 피우는 사람으로서 자살한 이는 아무도 없다.(W.머긴) 처칠은 여송연을 즐겨 피었다. 그의 코는 니코친의 굴뚝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포연처럼 그의 입과 코에서는 항상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젠하워 또한 지독한 애연가였다. 그는 하루에 세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우다 나중에 심장이 나빠지자 담배를 끊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언제나 담배를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녔다. 담배가 떨어지면 온 방을 헤매며 꽁초를 다시 주워 피었다.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내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천 번이나 끊었기 때문이다” 마크트웨인은 금연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중국 사람들도 담배를 많이 피운다. 그런데 중국은 담배 값이 들쭉날쭉이다. 호텔에서의 담배 값과 시장에서의 담배 값이 약간 다르다. 이름난 담배에 대해서 짝퉁이 나오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최근 ‘말보로’같은 짝퉁 양담배를 생산, 판매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실내 금연은 물론 실외라고 해도 공원 벤치 등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금연조치를 내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흡연률은 국민소득과 대개 반비례한다. 소득이 낮은 곳일수록 흡연률이 높다. 이래저래 골초들의 설자리가 없다. 그래서 새해의 다짐 중 으뜸이 금연인 모양이다.
/ 언론인·향토사학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