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貧者) 벗’으로 평생 가난한 이들의 병을 무료로 고쳐주며 일생을 산 장기려(張起呂)박사(1911~1995)는 그 자신 ‘가난한 의사’로 일생을 살아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새해아침 제자로부터 세배를 받고는 덕담(德談)을 건넸습니다.“금년에는 나처럼 살아보게.”

제자는 금방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짐짓 모르는 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살면 바보 되게요.” 장박사는 껄걸 웃으며 “그렇지, 바보가 되지. 그러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는가.” 깊은 뜻이 담긴 스승의 덕담에 제자는 마음속으로 감동했습니다.

설을 맞아 만나는 사람들마다 덕담이 오고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 건강하십시오” “돈 많이 버십시오”등등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들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평소에도 이처럼 정초만 같으면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반목과 갈등으로 어수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양력, 음력 두 차례 따로 신년을 맞이하기에 새해 인사도 두 번씩이나 하게 됩니다. 민족의 좋은 풍습 중 하나가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니 그렇다고 번거로워 할 일은 아닐 듯 싶습니다.

원래 새해덕담(德談)은 원시종교의 점복(占卜)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말에는 영적(靈的)인 힘이 있어 말한 대로되리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 덕담인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지역과 문화를 뛰어 넘어 보편적인 인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 말의 최면 때문에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믿음은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의 속담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덕담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거꾸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흔히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시집 못간 노처녀에게 “빨리 시집가야지”한다거나 딸만 낳은 종가 집 며느리에게 “어서 아들 낳아야지”하는가 하면 직장을 못 구해 실의에 빠져있는 젊은이에게 “빨리 돈 벌어야지”하는 등의 재촉하듯 하는 덕담은 되레 듣는 이에게 정신적 부담이 되게 마련입니다.

좋은 말도 가려서 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남을 기쁘게 해 준답시고 던진 덕담이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덕담이 아니라 험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기야 ‘악담이 덕담’이라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 악담은 듣기는 기분 나쁘지만 오히려 자신의 수양에 도움이 되고 자극제가 된다는 역설적인 해석인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덕담이 넘치는 사회는 좋은 사회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좋은 마음’으로 ‘좋은 말’을 남에게 건넬 때 사회는 그만큼 훈훈해집니다. 서로간에 덕스러운 말이 오고가고 그것이 봄바람이 되어 온 나라에 분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대한(大寒)이 지나고 4일이 입춘(立春이니 절기 상으로는 봄이 시작됩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제 몇 차례 추위가 더 있긴 하겠지만 봄도 머지 않은 셈입니다. 부디 올해 일랑 온 나라에 덕담으로 꽃이 피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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