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계통사업 첫 시행에 물류센터 선구자
김상훈 농협중앙회 제천지부장

일본서적 뒤지며 불모지에 유기농 개념 전파
흙사랑 흙살리기 운동은 “앞으로 국가적 과제”


   
지난 20일자로 단행된 농협중앙회 충북본부 인사에서 특히 시선을 끈 사람이 있다. 청주 석교동 지점장에서 제천지부장으로 전보된 김상훈씨(52)다. 김지부장은 인사내용이 공표된 후 누구보다도 축하인사를 많이 받았다. 그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농협에서 시·군지부장은 이른바 내부 인사의 ‘꽃’으로 통한다. 물론 그 이상의 자리와 역할도 많지만 평직원으로 농협에 발을 디뎌 지부장에 오르는 것은 당연히 ‘입지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동반되는 선망의 대상이다.

실제로 김상훈지부장은 조직 내에서 ‘가는 데마다 신화를 창조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 본인이 내세우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그동안 그의 인물됨이 묻혀져 있었을 뿐이다. 그의 제천지부장 임명이 특히 축하를 받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유기질 비료 계통 사업 처음 기획
건국대 농대(원예과)를 졸업한 김지부장은 1982년 충남 청양군지부 서기직으로 농협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농협맨으로 성장할 수 있는 ‘끼’를 처음 내보이기 시작한 것은 3년 후 서울 가락시장 농협공판장 개설준비요원으로 발탁되면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유통의 개념은 걸음마 단계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며 일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고되기가 그지없었지만 그에겐 소중한 경험이 됐다. 이 때 그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익혔다. 그리고 그 진면목은 1994년 농협중앙회 자재부(과장)에 근무하면서 본격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협이 유기질 비료를 계통사업으로 처음 농가에 공급한 것이 바로 이 해부터다. 물론 그 기획과 실무는 김지부장이 전담했다. 그는 일본 서적을 뒤져가며 유기질 비료와 유기농법을 연구했고, 이를 농협 계통사업으로 성사시킨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국내엔 오로지 화학비료만이 넘쳐났다.

우리나라에 유기농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풀무원 창시자 원경선씨(94· 현재 괴산 청천거주)다. 1975년 께, 그 역시 우연하게 접한 일본서적을 읽고 충격을 받은 게 계기였다. 결국 우리나라 유기농은 도입 20년만에 본격 정책사업으로 추진되게 됐는데 그 산파역을 김상훈지부장이 한 것이다. 이 때부터 김지부장은 흙에 대한 중요성이나 흙살리기 운동을 강조해 왔는데, 이는 곧 바로 국가적 현안으로 부각됐다.

당시에 대해 김지부장은 “내가 전문서적을 뒤지며 유기농이니 흙살리기운동 등을 말하니까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더라. 우리나라에서 자체 발간한 전문서적이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흙문제는 비단 농업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분야의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청원군 문의면 두모리의 쌀 친환경 시범포 조성으로 다시 재현된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쌀농사를 실현하기 위함인데, 처음 2농가로 시작해 지금은 56농가가 작목반을 만들에 이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중 24농가가 당국으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았다.

청주 물류센터 준비단장, 기회이자 고난
97년 청주 물류센터(하나로마트) 개설 준비단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동안 농협에 근무하면서 경제·유통쪽에 특히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던 그에게 기회이자, 한편으론 고난의 시작이었다. 그 때 농협은 유통시장개방과 외국 농산물 유입에 대비해 서울 양재, 창동과 청주 등 3곳에 대형 물류센터를 추진했다.

중소도시인 청주가 선정된 것은 당시 김덕영도지사가 미래를 예측, 유치계획서를 정부에 미리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참고할만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대형물류센터를 짓는 일이란 처음부터 엄청난 인내와 과정을 요구했다. 1년동안 밤낮을 잊은채 뛰다보니 건강은 말이 아니게 쇠약해졌고, 현재 신분증에 붙어있는 이 때 찍은 사진은 아무리 봐도 그의 얼굴이 아니다.

청주물류센터 개설 준비단장으로 일하며 그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주변의 사시적 시각이었다. 대전도 아니고 청주? 작은 도시에서 가능하겠어? 나중에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지?...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노력과 소신을 다한 결과 청주 물류센터는 양재 창동과 함께 성공리에 오픈하게 됐고,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하는 신기원을 이뤄낸 것이다.

이에 영향받아 당초 도매시장을 추진하던 경기 고양과 성남에서도 물류센터로 전환, 지금의 하나로마트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이런 일련의 역할 때문에 김상훈지부장은 그를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농협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최고의 찬사까지 받고 있다.

딸 둘 수석졸업에 서울대 합격 겹경사
김지부장의 농협·농업과의 인연은 어찌보면 부친 때부터 시작됐다. 부친 김천술씨(89)는 70년대 초 청주시청 정년퇴직 1호를 기록한 축산 양계 전문가였다. 일제 때 일본 농업전문학교를 나온 그는 청주시에서 농업관련 공무원으로 일하며 직접 젖소목장을 운영했다. 이 때만 해도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는데, 해방직후엔 본인이 집에서 병아리를 자가 부화시켜 농가에 공급하는 등 열성적으로 신기술 보급에 앞장섰다. 부친이 정년퇴직할 때 중앙지와 지방지 몇몇은 ‘축산왕 퇴직하다’ 등의 제목으로 그의 업적을 높이 기리기도 했다.

김상훈지부장은 자신이 지금 걷는 길을 숙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여러 농삿일을 경험했다. 때로는 기억하기 싫은 과정도 있었지만 결국 대학도 농대를 택해 농업과의 인연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남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다만 그동안 농협에 근무하면서 정말 내 천직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살아 왔다. 그러면서 미리 예측하고, 또 이에 대비하며 맡은 일을 수행한 것 뿐이다. 주변의 평가가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상훈지부장은 올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겹경사로 최고의 해를 맞고 있다. 큰딸 수연양(18)이 청주여고 수석졸업을 예약(?)한 상태에서 서울대 경영대에 수시합격했는가 하면 취재 도중에 또 느닷없이 중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 지연양(16)도 수석졸업한다는 소식을 학교측으로부터 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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