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위해 문중표 다지기·족보 따지기 … 종친회 전성시대

아버지는 빨치산, 장인은 기업가
권영길 후보 >> “무조건 문중표에 기대지는 않겠다”

권영길 후보는 TV토론에 출연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권우현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시대의 불행한 과거였다고 생각합니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아버지 권우현은 그 지역에서 신망 높은 인물이었다. 일본으로 밀항했던 아버지 권우현씨는 해방과 동시에 다시 고향 땅을 밟았다. 고향 땅은 권영길 후보의 할아버지인 권양호씨가 지키고 있었다. 할어버지 권양호씨는 대농(大農)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점점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 권우현씨는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했다.
집안이 특별히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권우현씨는 마을 유지들과 동네에 학교를 세울 만큼 지역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다.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군이었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았고 친화력이 높았다. 그러나 아버지 권우현씨가 빨치산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선 이후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어져 갔다. 당시 39세였던 아버지 권우현씨는 빨치산 소탕 작전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1954년 싸늘한 주검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이후 장남 권영길은 부산에 살고 있는 작은 아버지 권태현씨 집에서 자랐다. 가세는 기울었지만 장손에게 지게 작대기를 드는 농사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기울어진 집안 형편 때문에 권영길은 여동생인 영순·정순씨와 고생하면서 살아야 했다.
큰딸인 영순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막내 동생인 정순씨는 초등학교만 겨우 마칠 정도였다. 지금이야 모두 출가해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 시대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장남의 성공을 위해 여동생들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영길의 집안은 아주 오랫동안 고통의 터널 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권영길 집안 못지 않게 처가 쪽도 사연이 많다. 권 후보의 부인 강지연씨 아버지는 바로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의 창업주 강의수씨. 부인 강지연씨는 대기업 사장의 무남독녀였다. 장인어른인 강의수씨가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기 전까지 처가는 아주 풍족했다. 그러나 장인의 죽음 이후 집안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정확하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동방생명은 순식간에 삼성그룹으로 넘어가고 말았고, 부인 강지연씨와 장모는 회사 명의로 돼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빼앗겼다.
이런 두 집안의 내력 때문에 권영길 후보 가족들 가운데 특출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후보들처럼 집안 형제들 힘을 동원해 사조직을 꾸릴 능력이 없다.
권 후보의 본관은 세도가들이 즐비했던 ‘안동 권씨’다. 얼마 전에는 안동권씨 문중회보에서 권 후보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문중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아직 유교적인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문중의 힘은 막강하다. 하지만 권 후보는 다른 후보들처럼 무조건 문중에 기댈 생각은 없다. 문중을 사조직화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다만 권 후보를 몰랐던 그들에게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 가장 든든한 ‘사조직’으로 조직하겠다는 계획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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