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위해 문중표 다지기·족보 따지기 … 종친회 전성시대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보통 가문
노무현 후보 >> 노 후보가 가장 출세한 인물?

“우리집 가문에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가문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질문에 노무현 후보의 형 건평씨가 한 대답이다. 건평씨의 말처럼 노 후보의 가계는 그야말로 ‘보통사람들’이다. 집안에 유명한 판·검사도 없고, 돈이 아주 많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다.
노 후보는 광주(光州) 노(盧)씨 31대손이다. 전국에 9개의 본관을 가진 노씨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범양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내다가 안녹산의 난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 신라로 이주한 노수(盧穗)를 시조로 삼고 있다. 노수는 신라로 올 때 아홉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이 각각 맏아들은 광주, 둘째는 교하, 셋째는 풍천 등에 정착하며 현재 노씨의 9개 본관을 이룬다.
14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교하(交河) 노씨이니 굳이 따지자면 노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은 아주 먼 친척 사이가 되는 셈. 노 전 대통령 때 국무총리를 지냈던 노재봉씨는 광주 노씨다. 하지만 성씨만 같을 뿐 촌수를 세기도 힘들 만큼 멀기는 마찬가지. 노씨는 9개 본관을 모두 합해 약 30만명으로 추산되며, 3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노씨중앙종친회는 지난 87년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사는, 노 후보에게 아저씨뻘 되는 노재수씨는 ‘가문의 자랑’에 대해 묻자 무려 2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노 후보 9대조의 부인(전주 최씨)이, 당시 암행어사 박문수가 임금에게 추천해서 열녀비를 받았는데 아직도 마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때가 1729년이다. 이처럼 가문의 자랑거리를 찾아 273년을 거슬러 올라갈 만큼 노 후보의 가계는 내로라 할 명망가가 드문 서민의 집안이다. 사실 노 후보가 거의 독보적으로 ‘노씨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후보의 부모님은 매우 가난했다. 노재수씨는 “노 후보는 부친 때 굉장히 못살았다”면서 “근근이 끼니를 때웠다”고 전했다. 노 후보의 아버지인 김판석(76년 작고)씨는 일제 말기 객지에서 돈을 벌기도 했지만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다 날렸다고 한다.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큰형 영현씨(73년 작고)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했고, 둘째형 건평씨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10여년간 세무공무원을 한 뒤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두 언니인 명자·영옥씨는 일제시대 소학교만 나와 일찍 시집갔다.
안동(安東) 권(權)씨인 부인 권양숙씨의 집안도 지극히 평범하다. 다만 면서기를 지낸 노 후보의 장인은 친구들과 막걸리에 메틸 알코올을 섞어 마시다가 실명을 했고, 한국전쟁 때 부역한 혐의로 장기 복역 도중 71년 옥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 초 국민경선 당시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색깔론으로 공격하자 노 후보는 오히려 이렇게 대응함으로써 ‘노풍연가(盧風戀歌)’를 유행시켰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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