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심야토론> 노무현 후보편, 사회자 길종섭의 편파 발언

대선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TV토론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토론에서는 거꾸로 사회자와 패널들의 자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0월 12일 밤 방영된 KBS <심야토론>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초청해 2시간 가까이 토론을 벌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KBS ‘대기자’ 길종섭씨는 토론 중반 이후 사회자 권한으로 ‘신상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언론 문제, 또 다른 하나는 품성·학력 문제였다.
물론 대선후보를 검증하는 데에 있어서 그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질문 내용을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후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길종섭: 사람이 커 가면서 여러 가지 많이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건 좀 일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좀 어떻습니까.
노무현: 그렇습니다.
왜 갑자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물었고, 토론자로 검증을 받으러 나온 대통령 후보에게 사실 확인까지 받아냈을까.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질문을 보면 왜 대통령 후보 검증에 나선 사회자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속담 풀이’를 꺼내고 확인했는지 알 수 있다.
길종섭: 그런데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에 공개된 노 후보의 초등학교·중학교 생활통지표에 보면은 좀 ‘정서가 불안하다’ 또 ‘반항적이다’ 이런 평가가 나와 있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런, 지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이런 품성도 계속 갖고 간다면 대통령이 되시면 일국의 대통령이 정서 불안하고 상당히 반항적이라면 이게 상당히 문제가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이건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건데. 사람이 잘 변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 평가는 제가 초등·중등 9년의 학교생활 중에 어느 1년 선생님께서 쓰신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1년의 선생님이 쓰신 겁니다. 제가 또 초·중등학교를 그렇게 무난하게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도, 예를 들면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우리 이승만 대통령 찬양의 글을 작문하라는 것을 제가 그것을 ‘백지동맹’을 하고 거부하고 했던 그런 일도 있고 해서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은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런 것들이 표현됐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9분의 1로 봐주십시오.
초등학교·중학교 때 생활통지표에 기록된 담임 선생님의 평가에 ‘정서 불안’ ‘반항적’이라고 기록된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길씨는 그 사실을 갖고 (이미 노 후보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듯이) “일국의 대통령이 정서 불안하고 상당히 반항적이라면 상당히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야 길씨가 ‘속담풀이’를 먼저 질문했는지 이해가 된다.
길종섭: 답변도 상당히 좀 반항적으로 하시는 거 아닙니까(웃음).
노무현: 저는 기회가 있으면 차별화를 해야 하니까요. 양해해 주십시오.
길종섭: 그래서 그런지 노무현 후보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상당히 많이 갖고 있는 거 아니냐, 학력 얘기만 나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폐지론을 이야기했다가 문제가 되니까, 이번에는 서울대학교를 좀, 과격하게 뭐, 그 해결하겠다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품성하고 이런 게 전부 다 발언하고 연결되는 게 아닌지.
이상한 삼단논법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노 후보 인정) → 초·중학교 때 생활통지표에 정서불안·반항적이라는 평가가 있다(사실). 그런 정서불안·반항적인 품성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상당히 문제가 있을 것 아니냐 → (노 후보가 답변을 하자 농반진반으로 답변도 반항적이라며 다시 묻는다) 학력 이야기만 나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도 그런 품성(정서불안·반항적)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
학력 콤플렉스라는 건 부산상고를 졸업한 이력, 즉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귀를 씻고 들어봐도 사전 질문이나 답변에서 ‘학력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다. 다만, 길씨가 신상 질문을 통해 노 후보의 초·중학교 때 생활통지표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학력 얘기만 나오면 상당히 공격적이다” “(그런 태도가) 품성하고 연결된 것이 아니냐”는 의도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무현: 서울대 폐지론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문맥 자체에서….
길종섭: (중간에 말을 가로채며) 아니, 그건 또 바꾸셨지요.
노무현: 아닙니다. 그 자리 그 문맥에서 서울대 폐지론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바로 얘기했습니다. 신문기사에도 그렇게 나와 있을 겁니다. 서울대 폐지론은 불가능하다, 바로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연속해서 얘기했습니다. … (학력) 콤플렉스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 가는 것이 사람의 노력이고 수양 아니겠습니까. … 저는 역경을 잘 소화하면 그것이 콤플렉스가 아니고 더 좋은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 후보에게 ‘학벌 콤플렉스’에 대한 질문을 던진 KBS <심야토론> 사회자인 길종섭씨는 ‘명문 중 명문’으로 손꼽히는 경기고 출신. 이 학교 출신 언론인 모임인 ‘화동클럽’ 멤버이기도 하다. 2000년 월간 <말>지 5월호에 따르면, 화동클럽은 경기고 출신인 ‘이회창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화동클럽 회원들 면면을 보면,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39회)·오명 전 <동아일보> 사장(54회)·윤여준 한나라당 의원(54회)·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55회)·길종섭 ‘대기자’(61회)·장명국 전 YTN 사장(62회)·홍석현 <중앙일보> 회장(64회) 등 그야말로 ‘학벌과 사회적 지위가 엄청난’ 사람들이다.
공인으로서 대선후보가 언론의 검증을 받듯이, 그들을 검증하는 공인인 언론인도 검증을 받는 게 공정한 게임의 룰이다. 이같은 검증을 강요받기 전에 불편부당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대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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