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후보 승리 위해 매진” “우리 사이 이간질 말라” 화답 불구 다른 스타일·다른 속셈은 계속

노무현-한화갑 ‘쌍두마차’ 체제가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까지 갈등과 화해를 거듭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같은 언론 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의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과연 노무현-한화갑의 ‘진짜’ 관계는 어떤 것일까.

반노(反盧)·비노(非盧)그룹이 ‘탈당 불사’를 무기로 노무현 후보에게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던 9월말, 기자들의 눈과 귀는 한화갑 대표에게로 쏠렸다. 어느 한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던 한 대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판세가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은 시간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직접적인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던 한 대표는, 선대위 출범을 코앞에 둔 시점인 지난 9월 27일 “민주당을 끝까지 사수하고, 노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발언이었다.
이에 화답하듯이 같은 날 노 후보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불화가 있고 상호 간에 오해가 좀 있다고 하더라도 한화갑이든 노무현이든 원칙을 지켜온 정치인”이라며 “나는 그동안 한 대표를 신뢰한다고 이야기해왔는데 오히려 기자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0월 9일 한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와 관련해 “신당을 만들려는 단일화 취지가 국민적 여망이라면 당에서도 외면할 수 없다”며 “이것이 당의 공식기구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므로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후보 단일화를 결사반대하고 있는 노 후보의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이는 곧 노 후보와 척지고 있는 후단협쪽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일 만한 발언이었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한화갑 대표의 진심이고, 노무현-한화갑 체제가 순항하는 것인지 난항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노무현과 한화갑의 시각 차이

“한 대표의 생각은 간단하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반노·비노쪽은 노 후보를 민주당의 후보로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노 후보 쪽은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의 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대표는 현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노 후보라는 것이다.”
한화갑 대표의 의중을 비교적 잘 읽고 있는 이용범 민주당 부대변인의 말이다. 그는 “이런 키워드로 한 대표의 행보와 발언을 해석하면 일관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당의 재정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한 대표는 당의 공식 체계에 따라 사무총장의 권한이라는 데 힘을 실어줬다. 또 “노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을 때도 ‘민주당 사수’를 전제로 한 발언이었다. 즉, 노 후보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상 당 대표로서 지지한다는 전제 조건을 단 것이다. 당 대표로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발언이었다.
한 대표의 이같은 발언과 행보와 관련해 노 후보 쪽에서는 ‘기대 반(半) 불만 반(半)’인 상태다. 역대 어느 대통령 후보가 선대위 출범 이후에도 당권을 인정하며 배려해주었느냐는 것이다. 노 후보가 그만큼 한 대표의 권위와 역할을 인정해주었는데도, 대표가 당내 분란에서 뒷짐만 지고 침묵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노 후보와 한 대표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정치 역정과 스타일의 차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노 후보는 그동안 원내보다는 원외에서 활동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당내 의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또한 절차와 관례보다는 원칙에 부합하는가를 먼저 따진다.
반면, 한 대표의 경우 수십년 동안 동교동계에서 ‘조직 생활’을 경험하면서 정치를 해왔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는데 익숙하다. 개인적인 원칙에 앞서 조직적인 합의를 먼저 고민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차이는 6·13 지방선거 직후 ‘재경선’ 문제에 관한 처리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대표는 노 후보의 재경선 약속 자체가 무리수였고, 따라서 당 대표로서 재경선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할 테니 후보도 재경선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후 노 후보는 “재경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는 후단협에 대한 시각 및 대응 방법 등에서도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노 후보 쪽과 후단협이 극한 대립 양상을 보였던 초기에 한 대표는 애초 노 후보 쪽에 “11월 초까지 반노·비노쪽의 ‘노무현 흔들기’를 막을 테니 노 후보도 후보 단일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으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노 후보 쪽은 “국민경선이라는 공식 절차를 통해 뽑힌 후보를 무조건 흔들며 실질적인 사퇴까지 요구하는 무원칙한 사람들과 어떤 타협을 하겠느냐”며 원칙 고수를 강행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혔다. 당의 분란보다도 무원칙이 더욱 먼저 시정돼야 할 중대 사안으로 본 것이다.

한화갑 대표 선대위 행사에 불참?

노 후보와 한 대표간의 불화설은 가끔 엉뚱한 데에서 터졌다. 민주당 선대위 현판식과 임명장 수여식 행사 때 한화갑 대표가 모습을 비추지 않자, 또다시 노-한 갈등설이 제기됐다. 당 대표가 이처럼 중요한 당 행사에 불참한 것은 분명히 후보와 껄끄러운 뭔가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한 대표가 두 행사에 불참한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한 대표가 지난 2일 선대위 현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노 후보 쪽에서 실수로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노 후보는 실무진을 크게 나무라며 한 대표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9일 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은 마침 한 대표가 오전에 국회 대표연설을 하는 날과 맞물렸다. 애초 오전 8시30분에 임명장 수여식이 예정돼 통보를 받고도 ‘참석하기 어렵다’고 밝혔고, 이에 정대철 선대위원장이 오전 11시로 시간을 조정한다고 해 참석하려 했으나, 애초대로 오전 8시30분에 진행하는 바람에 불참하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노 후보 쪽은 고치면 될 일이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반면, 한 대표 쪽은 내심 섭섭해하는 눈치다. 반면 노 후보 쪽에서는 한 대표의 유연함이 지나쳐 원칙까지도 갈팡질팡하는 듯한 행보에 내심 못마땅한 눈치인 반면, 한 대표 쪽은 노 후보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양쪽 진영에서는 현재 노 후보와 한 대표가 ‘2인3각’의 달리기를 하는 ‘둘이면서도 하나고, 하나이면서도 둘’인 묘한 관계를 인정한다. 그 누구 하나가 다리에 묶인 끈을 풀기 전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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