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장고 끝에 김진호 전충북도의회의장을 청주 상당조직책으로 결정했다. 김 전의장은 지난 4일 임명장을 받고 제 2의 정치인생을 시작함으로써 상향식 정치실험의 장도에 올랐다. 실제로 그는 17대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충북에선 지난 16대 총선 때(2000. 4. 13) 충북도의회 의원이던 윤병태(충주) 김춘식씨(청주) 등 두명이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가 좌절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초선의원으로 도의회 의장을 지낼 때만해도 김 조직책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는 항상 여백을 남겼다. 분명 성공한 정치적 입신을 보여 왔지만 그만의 확실한 이미지 구축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충북정치의 1번지에서 다수당의 조직책을 거머쥠으로써 이같은 군더더기를 비로소 떨쳐 버리게 된 것이다.
지난 8월 23일 공모 후 그동안 숱한 얘기를 만들어 낼 정도로 조직책 결정과정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여섯명의 신청자가 당의 입장에선 하나같이 버리기가(?) 아까웠던데다 연말 대선을 의식해야 할 상황에선 탈락자들의 이반(離叛)이 줄곧 염려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신산(辛酸)의 과정이 있었기에 김 전의장에 쏠리는 관심 또한 획일적 잣대를 거부한다.

-조직책 결정과정에서 서로간 상당한 로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의 경우는 강창희 김용환 등이 적극 밀었다는 후문이다.

“낭설이다. 당의 결정과정은 시종일관 공정했다. 가장 큰 변수는 현지에서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수치를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았다. 당사자들이 로비를 했다고 하는데 결코 사실이 아님을 이런 말로 대신하겠다. 신경식 도지부장한테 ‘조직책 신청한 사람이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느냐’며 오히려 질책을 받을 정도였다. 끝까지 경합을 벌였던 이원호 도지부 사무처장한테 각별한 고마움을 느낀다. 당의 결정을 깨끗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조그마한 잡음도 없었다. 그동안 공천이나 경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가. 편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도 나에겐 과분한 복이다.”

-당이 본인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해 연말 지역 인사들의 한나라당 대거 입당을 주도한 공적을 인정받은 건 아니냐.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직책 결정의 가장 큰 관건은 여론조사였다. 후유증을 염려하는 당으로선 어쨌든 가장 객관적인 자료를 중시할 수 밖에 없었다. 조상 대대로 300여년을 청주에서 살았고 도의장을 지냈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명도에서 유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당에 대한 기여도도 감안됐을 것이다. 그동안 도지부 부위원장과 후원회장을 맡아오면서 나름대로 소신을 다 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직책 선정과 17대 공천은 별개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역할에 대한 배려 차원의 결정이지, 향후 공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공천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천은 그때 가서 적법 절차에 의해 이루어질 사항이다. 지금은 공조직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당을 위해 노력하면 그만이다. 임명장을 받을 때 연말 대선에서의 역할을 주문받았고 나 스스로도 대선의 지역 득표율을 극대화시키는데 전력할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정치력을 인정받을테고 또 공천도 받지 않겠는가. 조직책 임명에 대해 일부 음해성 얘기가 나도는데 전혀 사실무근이다. 어차피 정치판인데 무슨 얘기는 못 나오겠나. 신경 안 쓴다.”

지역에 연고가 확실한만큼 연말 대선 때 당의 득표를 최대한 끌어 올리는데 1차적 목표를 두고 있다고 강조한 김 조직책은 아주 색다른(?) 정치관의 소유자다. 삶에 순리가 중요하듯 정치 역시 물 흐르듯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대개의 정치인 내지 지망생들이 정치적 신념을 못박아 밝히기를 즐기지만 그의 정치 얘기는 싱겁기까지 하다. “때가 되면 정치도 하고 또 기회가 오면 국회의원도 하는거지... 내가 뭘 한다고 해서 꼭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무리를 해 가면서 억지로 정치할 생각은 없다. 시운이 따라야지.” 이런 식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가 도의회 의장이 될 때도 당시 뇌물 파동의 와중에서 묘하게도 운은 그를 따랐다. 그 때의 일에 대해 사석에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당시 사건에 연루돼 고생한 분들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나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솔직히 처음엔 내가 당선된다는 확신이 없었는데 사건을 겪으면서 도중에 생각이 바뀌더라. 정치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같은 맥락에서인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평가중엔 너무 편한 길만 택하는게 아니냐는 질시도 있다. 이를 따져 묻자 그는 질문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잠시 인터뷰 거부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잘못된 말인가. 주변에 일부 이런 얘기가 있어 물은 것 뿐이다.

“이거야 말로 오해다. 81년 민정당 창당 당시 도지부 사무국장이던 조성훈씨의 권유로 정치와 인연을 맺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98년 오용운 전국회의원의 제의로 자민련에 들어가 지방의원까지 지냈다. 2년전 자민련을 나온 것은 잘 알다시피 호남고속철도 오송기점역 파문으로 자민련 소속 도의원들이 집단탈당한데 따른 것이다. 이런 전력 때문에 나를 잘못 이해한다면 서운하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 뿐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하기 나름에 따라 평가받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공조직의 책임자로서 일단 연말 대선에 전력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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