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TV뉴스는 해발 1708미터의 설악산 대청봉에 첫 얼음이 얼었다고 전 했습니다. 설악산이 홍엽(紅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단풍은 날마다 수 십리씩 백두대간을 타고 남녘을 향해 만산을 물들이며 내려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 가는 것이지요.
지난 2일은‘노인의 날’이었습니다. 사회가 하께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를 일깨우기 위해 정부가 지난 1997년 제정해 여섯 번째 맞는 기념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날 하루 노인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얼마나 공경을 받고 즐겁게 지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이라 함은 법적으로 만 65세 이상의 노년을 가리키는 말로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급속도로 고령화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2000년 7%였던 노인인구가 현재 전 국민의 7.9%인 37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에는 노인인구가 15.1%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1930년대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이 33.7세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늘 그것이 80세를 육박한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경하할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인류역사가 있은 이래 인간의 변함없는 꿈이 무병장수였기에 말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민족이 바깥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 첫 번째는 경로사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비록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부끄러운 한때의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노인에 대한 사회적 공대(恭待)는 각별했던 것으로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실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미풍은 근 현대에 들어와 농경사회가 막을 내리고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퇴색하기 시작했고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화 하면서 이제 노인들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설자리조차 잃고 배회해야하는 딱한 처지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사회복지가 완벽한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가면 노인들은 늙고 외롭다는 것 외에 부족한 것 없이 사회의 보호막 속에서 편안한 여생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공짜로 태워주고 국립공원을 공짜로 들여 보내주는 것이 고작 이요, 노인복지라는 것이 있기는 있기나 한지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노인 5명중 1명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이고 자녀 없이 사는 독거 노인도 최근 20년 새 20%에서 50%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노인 10명중 7명이 만성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니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엿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늙는 것은 자연의 순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 노년이 비탄과 고통의 세월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노인들은“빨리 죽어야 하는데…”를 이구동성 습관처럼 되 뇌이곤 하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노인 문제는 늦으나마 이제라도 가정과 사회가 함께 관심을 갖고 국가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되리라 봅니다. 그럴 때 땅에 떨어진 경로의식도, 부모에 대한 효 사상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인의 날’이랍시고 1년에 하루 기념식이나 연다고 해서 풍상에 찌든 노인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얼마나 위로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근담에는 노년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하루해가 저물매, 황혼 빛이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려 하매, 귤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